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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통계 31] 한국 보건의료 현실, 사회주의와 독점대기업의 모순의 중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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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14) | 추천 (0) |점수 (5) | 2009-06-10 11:29:42 김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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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건의료 현실, 사회주의와 독점대기업의 모순의 중첩 -보건의료 시스템 개혁의 기본 전제와 방향-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자전거 프레임에 오토바이 바퀴 끼우기 자전거 프레임에 비싸고 튼튼한 오토바이 바퀴를 끼우면 어떻게 될까? 뻔하다. 잘 끼워지지도 않겠지만, 용케 끼웠다 하더라도 자전거의 성능은 더 떨어진다. 연비를 개선한다고 오토바이 프레임에 가볍고 날렵한 자전거 바퀴를 끼우면 어떻게 될까? 뻔하다. 바퀴가 일그러져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이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보건의료 시스템이든 수많은 하위시스템과 기능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시스템은, 돈들여 이룩한 국지적 선진화 혹은 개혁.개선이 시스템 전체의 퇴행을 초래하거나, 사용자의 왕짜증을 초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의약분업이나 의료보험공단 통폐합 정책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옳다는 신념과 개혁의 원칙은 확고했지만, 좋은 의도를 나쁜 결과로 되갚는 복잡다단한 한국 현실을 잘 몰랐던 노무현 정부하에서는 이런 경우가 더 많았다.
예컨대 (조감도만 보여주고 아파트를 팔 수 있도록 허용한) 선분양제는 유지하고,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규제도 하지 않은채, 그나마 총부채상환비율 규제(DTI) 등 금융규제도 하지 않고, 저금리와 분양가 자율화와 혁신도시, 행복도시라는 선진화(?)를 추진하자 부동산 폭등사태가 일어나 버렸다. 소득 파악 미비, 소득 신고 누락 등을 전제로 한 높은 세율을 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용카드 사용이 확대되고, 세정이 투명화, 선진화 되자 자영업자들의 세금 부담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하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고 대통령이 탈권위의 기치아래 제왕적 권력을 놓아버리는 선진화(?)를 추진하자, 유무형의 규제(처벌)권이나 자원 할당권을 가진 검찰, 관료, 공기업, 공단, 재벌대기업, 지방토호 등이 살판나버렸다. 당정분리와 탈권위주의로 인해 지배 주주가 없는, 소상점주연합회 비슷한 열린우리당은 콩가루 집안으로 운영되다가 끝내 해체되어버렸다.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층 일자리를 휩쓰는 상태에서 먹고 살만한 여성들의 정서와 요구를 담은 성매매방지법을 엄격하게 시행하자 하층 여성의 고통이 극심해져 버렸다.
참여정부는 신용카드 사용의 확대와 사회의 투명성 강화에 따라 대체로 예상 세수보다 실제 세수가 더 많아졌기에, 증세 없이 비교적 풍족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거대한 한국의 3비층(비경제활동인구=실업자,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 비정규직)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이들은 재벌,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조직노동, 부동산 부자들과 달리, 후진적인 법, 제도, 관행의 사슬(예컨대 불공정거래)에 묶인채 세계화(해외 소비의 폭증), 지식정보화와 교통의 발달(빼어난 공급자 및 수도권으로의 집중), 유통 현대화(할인점과 인터넷/홈 쇼핑 유통), 중국의 싼 농산품, 공산품, 노동력(주로 조선족)의 파도에 얻어맞고, 신용카드 확산과 회계 투명성 강화로 인해 발가벗기우고, ‘3비층’이 아닌 사람들이 주로 혜택을 받는 사회안전망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물론 국지적 선진화 중의 최악은 아마 김영삼 정부가 주도한 외환금융자율화와 대학설립 및 정원 자율화 일 것이다. 전자는 외환위기를 초래하였고, 후자는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 콩나물 강의실과 부실 대학교육, 중하층 노동력의 기근과 대졸 백수 폭증 사태를 초래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그 어떤 정부보다 사심없이 의욕적으로 부지런하게 개혁을 추진했지만, 예상외로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명백하다. 자전거 프레임에 유럽산 오토바이 바퀴를 끼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을 신념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요란하게 벌렸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합법화, 제도화, 관행화된 오랜 불의(토대나 뼈대)를 그대로 두고, 일부 상부구조나 표피만 개혁하다 보니 소리는 요란하되 성과는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들이 토대나 뼈대를 개혁하지 못하고, 상부구조나 표피만 개혁하는 우를 범한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한국 사회는 정말로 종합적 통찰력이 필요한 표리부동하고 복잡다단한 사회인데 반해, 정치 집단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지식인 집단의 안목은 분절적이고 표피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익 집단들은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는데 유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율화, 분권화, 탈권위, 공공성(공적 책임성)강화 등 선진적 가치로 사익을 포장하는데 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 집단의 무지/무능과 사익 집단의 유능 구도는 이명박 정부에 와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있다.
이명박 정부 최대, 최악의 정책 실패? ABR(Anything But Roh)이 그 정책적 정체성인지, 이명박 정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좌파적이라고 부정하고 폄하해 왔다. 그러나 대선, 총선 공약으로 보나, 지난 1년간의 정책 행보로 보나, 보건의료 정책에 관한 한 그 문제의식과 정책 기조는 노무현 정부와 별 다를바 없다. 노무현 정부처럼 공적의료보장 수준의 상향을 최우선 순윙 놓고, 중증질환자에 대한 급여 범위 확대 및 본인부담금 경감을 중시하고, 국민건강보험 관련 정책도 큰 틀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리 운영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약간의 참신한 아이디어성 공약은 있다. 자발적인 기부금을 중심으로 의료안전망 기금을 조성하고, 건강포인트를 부여하고, 이에 따른 혜택을 제공하고, 6대 권역별 건강마을을 설립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보건의료 정책 기조를 건드릴만한 큰 정책은 아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각종 괴담을 만들어내면서 거세 역풍을 맞았던 현안들; ‘영리의료법인 시범 실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공사보험 정보공유 추진), 의료기관 자본투자활성화법(의료 채권발행법), 의료광고 허용, 해외환자 유인/알선허용, 의료법인 부대사업범위 확대, 의료기관 합병에 관한 법적근거와 절차마련’ 등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추진해 오던 정책이었다. 그런데 2008년 봄의 촛불시위 사태의 충격 탓인지 그 추진력은 노무현 정부에 비해 오히려 약해져 버렸다. 민간의료보험 문제나 영리의료법인 문제에서 주춤거리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이명박 정부가 다소 주춤거리고, 약간의 갈짓자 행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큰 틀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계승하는 한, 시간이 가면 국지적 선진화로 인한 모순은 점점 첨예화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의 행보로 보면, 이명박정부는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과 유착은 더욱 공고하고, 수뇌부의 학습능력과 위기 대응능력은 떨어지고, 복잡한 개혁을 일관되고 세련되게 추진할 정책컨트롤 타워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와 독점대기업의 모순의 중첩 보건의료 분야에서 널리 공유되는 최우선 가치는 공적 의료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자율화, 분권화, 민주화, 탈권위처럼 자명한 선진적 가치로 간주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부분의 정책적 실패는 바로 이런 확신으로부터 왔다. 이런 확신이 전후 사정을 보지 않고, 자전거 프레임에 비싼 수입품 오토바이 바퀴를 과감하게 끼우도록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적의료보장 수준(공적보장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국가 책임, 통제 영역이 확장되고, 시장거래 영역은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한국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실시되고 있고, 의료 행위에 대한 평가 보상은 단 한개의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의료기관을 하청업체에 비유하면, 국민건강보험은 하청업체의 명줄을 쥔 유일한 납품처(원청업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구조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공적보장률의 상향은 이 원청업체에 대한 의존도 또는 원청업체의 지배력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지적 선진화로 인해 시스템 전체의 성능이 더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료공급자들은 유럽과 달리 국비로 양성되지도 않았고, 당연히 공무원도 아니다. 의료공급자들은 리스크를 안고 투자를 해야 하고, 환자가 없으면 쪽박을 차야 한다. 당연히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고수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간 기업과 다를 바 없다. 망할 염려가 없는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면 그 종사자들은 더 없이 좋지만, 적자는 필연이기에 지속가능하지가 않다. 게다가 의료공급자의 명성이 높으면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오는 만큼 우수한 공급자와 열등한 공급자간의 양극화 소지도 크다. 한편 우수한 인력이 더 많은 자유와 더 높고 안정된 수입을 바라고 보건의료 분야로 몰려온 만큼 그 기대 수준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 이 모든 조건은 공적 보장률의 향상에 따라 자기 부담이 점점 적어지는 환자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의료공급자 간의 부적절한 담합 가능성을 높인다. 게다가 적정한 의료행위의 경계가 모호하다. 예컨대 제왕절개 분만률이 한국이 월등히 높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고령화(노인질환 폭증)와 당뇨 및 아토피를 초래하는 생활 양식의 급변, 고가 의약품과 의료장비의 출현, 행위별 수가제, 의료 소비자 권익 강화(환자의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의료공급자는 자기 방어 행위 차원에서라도 철저한 검사가 필요하다) 등으로 인해 의료비 폭증 압력은 엄청나게 높다. 반면에 60% 초반에서 꿈쩍도 않는 고용률과 낮은 고용질, 의료보험료를 제대로 내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한계 계층(주로 3비층)의 존재, 점점 강해지는 조세 및 보험료 관련 저항, 포퓰리즘 경향이 강한 정치 집단 등으로 인해 보건의료 재정을 급격히 늘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들어오는 돈(세금, 보험료)은 구조적으로 적은데, 나갈 돈이 많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납품업체의 상품을 평가하여 돈을 지급하는 창구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면! 당연히 원청업체의 창구 직원은 협력업체 위에 군림하는 상전이 되고, 원가 절감(재정 수지 개선) 지침이 내려오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돈 달라고 내미는 손이 과잉, 부당청구를 일삼는 ‘도둑놈의 손’이라고 해야 한다. 적정 의료행위의 경계가 모호하니 이 근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그 외에도 행위별 수가체계, 적지않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가, 의료공급자의 강력한 이윤동기,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권을 뒷받침하는 정보 부족 등 의료공급자를 도둑놈으로 만드는 조건은 많다.
따라서 공적보장률이 올라가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둔탁하고,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수가, 약가, 의료행위 등) 평가보상 기구와 생존, 번영을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노력하는 의료기관이 점점 격렬하게 부딪칠 수 밖에 없다. 이는 자전거 프레임과 유럽산 오토바이 바퀴의 충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사들 대부분이 이런 보건의료 시스템을 만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치를 떠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 만족도는 계속 올라가기에 이명박 정부 역시 보건의료 시스템의 큰 틀을 바꾸거나, 최소한 국지적 선진화의 그늘도 해소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므로 의사들의 원성은 잦아들 수가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구도가 유지되면 그 귀추는 뻔하다. 그것은 사회주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모순과 독점적 원청 대기업이 관리하는 협력업체 생태계의 모순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말해 단 하나의 원청대기업에 명줄이 잡힌 하청업체 격인 의료공급자는 점점 피폐하게 되고, 의료 서비스 질은 하향 평준화 되는 것이다. 실제 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의 양, 질에 둔감한 평가보상 체계로 인해 흉부외과 등은 지원자가 거의 없고, 필수의료가 아니라서 비급여 영역이 많은 피부과, 성형외과에는 최우수 의료 인력이 몰린다. 점점 줄어드는 돈 될만한 영역(피부과, 성형외과)으로는 기회를 놓칠새라 격렬한 ‘러쉬’ 현상이 일어나서 공급 과잉 사태가 속출한다. 병원들의 수익은 점점 더 의료 외적 영역(장례식장, 주차장, 식당 등)에 의존한다. 시대의 요구인 맞춤형 의료와 고급 의료서비스 발전은 점점 지체되거나 심지어 퇴행한다. 당연히 해외 의료쇼핑객이 증대할 수 밖에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으로서는 의료서비스는 외화를 엄청나게 벌어올 수 있고, 벌어와야 하는데 정반대로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사회주의적 모순의 하나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의료 재정 할당(급여 대상, 범위 등)과 규제, 처벌권을 둘러싼 관리 통제 기구(원청대기업)에 대한 격렬한 영향력, 로비력 경쟁이다. 보건복지부(보험공단, 심평원 등)를 감독하는 국회 보건복지가족 위원회는 가장 잘 알려진 영향력 확대 또는 방어 공간이다. 18대 국회의원 중 보건의료계출신 12명 중 7명이 보건복지가족위원회에 집중되어 있다.
공정한 경쟁과 합리적인 상벌의 문제 나는 위에서 길게 언급한 현행 보건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들어 현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말많고 탈많은 국지적 선진화, 즉 공적 보장률의 상향과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지적 선진화가 시스템 전체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도록 유관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지적 선진화의 그늘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이는 한국의 비용 대비 높은 소비자 만족도와 높은 의료성과를 창출한 핵심 요인을 천착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자유로운 소비자 선택권, 공급자간 생사를 건 무한 경쟁,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적지 않은 질환을 커버하면서 의료기관 문턱도 낮추고, 공급자 횡포를 상당 정도 방지한 국민건강보험 제도, 획일성과 보편성을 중시하는 국민건강보험의 그늘을 어느 정도 해소(완충)한 비급여의 매력, 의사 면허증 소지자에게 부여된 몇가지 독점권 등이 핵심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이미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많다. 약가나 세금에서의 변칙, 편법이 대표적이다. 의료법이 보장하는 독점권도 선진국 수준으로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주차장이나 장례식장은 일찍이 부지를 넓게 잡은 선발 병원들이나 누리는 혜택일 뿐이다. 비급여 영역도 2007년 현재 35%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앞으로 조금은 더 떨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업과 사회 발전의 관건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저변)과 합리적인 상벌(성과보상)체계이다. 여기에 더해 우수한 인력까지 결합하면, 한국은 오래지 않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한 적이 많다. 아시아 전역을 휩쓴 한류 열풍의 근원인 한국의 영화, 드라마 산업이 그 전형이다. 이 산업은 오랫동안 국가의 규제도, 지원도 없는 가운데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시장원리가 작동하였다. 여기에 창의적, 예술적 재능이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뛰어들면서 한류 열풍을 만들어 낸 것이다. 디지털 테스트 베드(Digital Test Bed)로 불리우면서 첨단 상품(정보통신 기기)과 서비스를 토해내는 정보통신 산업을 키워낸 토양도 한류를 만들어낸 토양도 다르지 않다. 천주교와 달리 한국 기독교에 훌륭한 목사와 대형 교회가 즐비한 이유도 그 바탕에는 소비자(신자)의 자유로운 선택권과 복음 공급자(교회와 목사)간 치열한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2007년까지 수출 상품 1위, 2위를 차지한 반도체 산업과 자동차 산업의 성장 배경도 살펴보면, 관료들이 초창기에 이 산업에 대해서 잘 몰랐고, 또 (안될 산업으로 간주하여) 눈 밖에 나는 바람에 기업가들의 창의와 열정이 한껏 발휘되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수 십년 동안 줄기차게 투입되었어도 세계적인 기업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 분야가 바로 의료 산업, 법률 산업, 금융 산업이다. 이들은 대체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지 않았고, 높은 진입장벽을 통한 공급자 보호 속에 안주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 중 금융 산업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하게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었다.
나는 이를 근거로 모든 진입장벽과 공급자 보호 목적의 규제가 악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산업과 사회 발전의 관건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뒷받침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세련된 규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유치산업단계에서의 일정한 특권, 특혜(지원)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없이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도, 합리적인 평가보상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우수한 인재와 유휴 자본도 모여들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한 국가의 규제, 감독 수준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과 비례 한다. 의회가 거수기가 아닌 이상, 관료는 어차피 정치에 의해서 컨트롤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을 쥔 한국 정치의 수준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공적보장률의 상향의 그늘이 매우 우려되는 이유는 바로 세련되 규제, 감독을 할 능력이 없는 후진적인 정치와 관료가 의료 부문의 자원 배분에 점점 깊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자세와 생활 습관이 아주 나빠도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기에는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성장이 멈추면 심각한 질병을 앓는다. 이처럼 현재의 보건의료 시스템은 대세 성장기 이기에 심각한 모순과 부조리가 덮히는 측면이 있다. 마치 홍수를 걱정할 정도로 만수위에서는 강물의 오염 문제도, 난개발로 엉망진창인 하천 바닥의 문제도 다 덮이는 것처럼……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획기적인 개혁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 보건의료 정책은 김영삼 정부의 외환금융자율화 정책처럼,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자율화 정책처럼,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처럼 이명박 정부 최대, 최악의 정책 중의 하나로 될 지도 모른다.
보건의료 개혁의 전제와 방향 한국의 비용대비 높은 의료성과로 보나, 산업발전 경험으로 볼 때 보건의료 시스템 개혁의 기본 전제와 방향은 명백하다.
기본전제는 첫째, 보건의료 재정이 사면초가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보건의료 관련 숱한 문제들은 세금이나 보험료를 많이 걷으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 경제사회 구조, 문화 등을 살펴보면 그 동안의 추세보다 더 급격한 재원 조달이 너무나 어렵다. 단적으로 한국의 국민의료비 또는 공공이 부담하는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는 OECD국가 중에 단연 1위이다. 2001~2005년 기간 건강보험관리공단이 지불한 의료급여의 연평균 증가율은 16.89%인 데 반해, 건강보험의 연평균 증가율은 8.6%이다. 건강보험이 거두어 들인 재정도 경제성장률의 2배 수준이지만 급여 증가율은 거의 4배 수준 인 것이다. 1종, 2종 의료수급권자 총 176만 명에게 지급되는 의료급여 지출 총액은 2001년 2조1000억(보건복지부 일반회계예산의 21.3%)에서 해마다 20% 이상 증가하여 2006년 현재 3조5천억에 달한다. 반면에 한국은 소득파악도 원천 징수도 쉽지 않은 자영업자와 임시/일용 근로자가 경제활동인구의 2/3를 넘는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경제활동 인구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전 가구의 1/8(200만 가구)이 건강보험료 체납 세대이다. 2006년 담배부담금 인상 좌절에서 보듯이 정치권의 포퓰리즘 성향도 증세, 증률을 어렵게 한다.
두번째 기본 전제는 공적 보장률 상향은 다가가면 멀어지는 무지개가 될 가능성이 높기에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된다. 2007년 현재 공적보장률은 64.6%이다. 2004년 61.3%, 2005년 61.8%, 2006년 64.3% 이었다. 2006년 들어 급상승한 이유는 입원환자의 비급여 비용 중 약 30%를 차지하던 식대가 2006년 6월에 보험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는 것 같이 목표에는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이다. 암환자 진료비 보장률도 71.5%인데 복지부가 2005년 6월 보장성 강화 로드맵을 세우면서, 2007년 전체 보장률 목표치 70%, 암환자 보장률 목표치 75%로 잡았던 것에 비추면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이다. 불과 3년 전에 정교한(?) 계산을 거쳐 세운 목표가 왜 이렇게 번번이 어긋날까? 이유는 명백하다. 비급여 영역을 급여 영역으로 바꿔버리면, 그 동안 높은 (비급여)비용에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적으로 팽창하기 때문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의사가 공무원화 되어있고, 행위별 수가체계도 아니며, 의료 기관도 명실상부한 공공의료 기관적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 많다. 따라서 과잉 의료 충동을 막는 기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유사시 정부나 보험공단이 주치의 제도 등을 통해서 말단에서 의료 수요 통제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적으로 2006년 새롭게 급여 항목이 된 식대, 초음파, 양전자단층촬영 등에 대한 실제 집행률은 예산보다 68% 초과하였다. 이런 일은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는 과정에서 계속 반복 될 수밖에 없다. 식대를 의료 보험 처리했을 때는 예외적으로 공적 보장률이 계산만큼 올라갔는데 이는 식대의 의료보험화를 기회로 굶던 사람이 3끼, 4끼 먹는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이 의료 수요의 전부라면 점차적으로 재정을 늘리고 도덕적 해이를 줄여 대부분을 급여 항목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새로운 의료 장비, 약품, 서비스와 새로운 의료니즈가 끊임없이 솟아나서 비급여 영역을 끊임없이 늘려간다. 게다가 의료비의 블랙홀인 노인 인구가 급증한다. 종합적으로 공적 보장률의 상향은 일종의 다가가면 또 멀어지는 무지개 인지도 모른다.
시스템 개혁의 기본 방향은 첫째, 의료공급자에 대한 상벌(평가보상)을 담당하는 국민건강보험을 상생적 경쟁이 가능한 단위로 쪼개고, 그 순기능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은 독점이기에 제약사, 의료기관과 수가 협상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행의 국가독점 보험은 의료공급자의 부당 청구를 감시하고, 의료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출납 기능을 수행하기에 맞는 조직이다. 그러나 보험공단이 이런 20세기적 역할(독점 대기업의 구매담당+출납계 역할)에 머문다는 것은 의료 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자나 협력업체의 선택, 심판권이 작동하지 않는 모든 독점-그것도 국방, 치안 같은 공공재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라면-은 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독점체를 관리통제하는 정치가 취약한 상황에서는......
둘째, 고급 의료 공급 기관을 일정 비율-결코 많을 필요도 없고 많아서도 안되겠지만- 허용해야 한다. 유럽과 달리 한국 주변에는 의료소비의 국제화, 맞춤화, 고급화 요구에 부응해 의료서비스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함으로써 해외 환자들을 대거 유치하려고 하는 나라들(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이 많다. 따라서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필요성은 주변이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같은 의료 후진국으로 둘러싸인 유럽보다 훨씬 절박하다고 할 수 있다.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으로 해외 의료 쇼핑객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있고 고급의료 기술 적용을 선도할 고급 의료소비자들의 요구를 국내화하는 정책이다. 이들의 요구를 국내화해야 중국 등지로부터 쏟아져 나올 의료 쇼핑객을 유치할 수 있고,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을 빼놓고는 도모할 수가 없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많은 부문에서 비용 다운사이징 경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의료의 경우는 오히려 고급화 경쟁이 거세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비용 측면에서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의료산업만큼 중요한 산업이 별로 없다. 게다가 보건의료 부문에는 우수한 이공계 청년 인재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 있다. 이들과 세련된 규제, 감독이 결합하면 의료산업은 지금의 반도체, 자동차, 한류 이상의 외화벌이(Cash Cow) 및 양질의 일자리 생산 공장이 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 산업은 사람과 사람이 피부접촉을 해야 하는 일이 많기에 중.하층을 위한 일자리도 엄청나게 많이 생산될 수가 있다. 고급 의료 서비스의 성장은 국민적 위화감을 걱정하기에는, 외화벌이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 주는 이점이 너무나 크다.
셋째 민간보험의 역기능을 억제하고,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 보건의료에 관한한 사회주의적 가치와 이상이 상당 정도 필요하다는 것은 문명국의 상식이다. 하지만 인간의 처지와 니즈가 무한히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국경의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는 평가보상 체계가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서는 도저히 이 니즈에 조응할 수가 없다는 것도 또한 상식이다. 보건의료 재정, 의약품 기술, 의료기기 기술, 의료 인력의 양에서 많이 앞선 유럽의 의료서비스가 한국에 비해 후진적인 것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평가보상 시스템이 압도적으로 국가의 통제에 놓여있는 현실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원래 벤처 산업 중흥의 전제 조건은 처지가 너무나 다양한 벤처기업에 다양한 조건의 신용을 공급하는 벤처 금융시스템이다. 발달된 민간보험 없이 의료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것은 벤처 금융시스템 없이 정부 정책금융과 은행 담보 대출에만 의존하여 벤처 산업을 중흥시키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벤처 강국의 전제조건은 건강한 기업가정신과 더불어 다양한 벤처기업에 다양한 조건의 신용을 제공하는 벤처금융 시스템인 것처럼, 의료 강국의 전제조건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합리적인 보상을 하는 보험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번의 거대한 민심의 스윙을 초래할 것인가? 지난 대선과 총선 결과는 10년간의 좌파적 개혁에 대한 환멸의 소산도,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환멸의 소산도 아니다. 자전거 프레임에 비싼 유럽산 오토바이 바퀴를 끼우는 식의 개혁을 의욕적으로 요란하게 수행한, 성과를 낼 줄 모르는 진보 정권에 대한 환멸의 소산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오독하여 미국산 오토바이 바퀴를 끼우는 식으로 일관한다면 민심은 또 한번 거대한 스윙을 할 수 밖에 없다.-끝-
**이 글은 충북의사회지(2009. 17th)에 게재된 글입니다. 민영의료보험 문제, 영리법인 문제, 의료 산업화 등은 진보 일각에서 미국식 의료로 가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발상이 결코 진보적이지도 개혁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보의 비대칭성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의료상품의 특성과 우리나라 모든 이익집단의 스스로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을 감안하여 정교한 규제, 감독 장치가 필수불가결 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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