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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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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13) | 추천 (0) |점수 (0) | 2010-01-27 17:20:57 김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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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김태현(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책임연구원)
현대 사회는 담론의 시대요 대중 참여의 사회다. 한국 사회 헌법질서를 존중하면서 우리 현실에 뿌리박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민주진보개혁진영의 담론지형은 크게 진보적 자유주의, 한국형 사회민주주의, 제3의 길을 포함한 유럽형 사회민주주의로 대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담론지형은 사회경제적 하부구조를 토대로 담론화의 주체를 통해 사회와 대중을 향해 시그널을 보내고 주체로 호명을 한다.
과학적 사유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심층으로 나아가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담론은 이러한 사유의 원환운동의 기본적 고리를 형성한다. 따라서 담론은 ‘절대적 진리’니 ‘보편적 진리’니 하는 등의 발상과는 거리를 둔다. 인간이 창출해내는 모든 담론들은 상대적이고 국지적이며, 일정한 조건위에서 성립하는 것들일 것이다.
담론지형의 구조를 살펴보면, 각 담론과 담론화의 양태를 인식하고 그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것, 다른 언어를 통해서지만 결국 수렴하는 생각, 서로 다르지만 소통이 가능한 어떤 접점, 그리고 같이 나가다가 갈라지는 지점, 분화의 심급 등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 다원화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가능한 한 ‘열린 총체성’을 지향 하면서 개별 담론 사이의 ‘소통의 다리’를 놓고 통합과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와 연합정치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현시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
담론화의 주체는 차별화하려는 인식론적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말아야한다. 동일한 가능성의 장을 형성하는 담론은 브람스의 교향곡이든 흘러간 조용필의 노래든 모두 가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인식론적 위상의 차이는 무시하지 않되, 어떤 조건에서, 어떤 측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은 ‘한국형 사민주의’를 비교적 명료하게 정식화 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2009, 창비)이다. [한반도 경제]는 한신대 이일영 교수가 상장한 책으로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라는 국가전략 연구모임의 문제의식과 토론의 결과물이다.
이일영 교수는 ‘한반도 경제’에 대해 ‘단순한 지리적 경제 단위’가 아니라 경제현상의 분석을 위한 개념적 도구일 뿐 아니라, 현실의 제약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프로젝트의 성격도 함께 갖는다고 말한다. 한반도 경제는 남북한을 아우르는 포괄적 경제 단위이고 남북한의 시스템을 개혁하고 통합 하면서 세계와 공존하게 만들려는 정치경제적 기획이라고 한다.
남북간 협력과 분업을 통해 발전과 안정성을 확보 하려는 ‘민족경제’ 구상과 유사하지만 민족경제라는 개념에 내장된 패쇄성과 배타성을 경계하면서 남북한과 내부의 지역사회, 동아시아까지 포괄하는 중층적 개념으로 한반도 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반도 경제는 세 개의 축에 의해 지탱된다.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국가, 활성화된 지역, 시장과 위계조직의 중간 형태로 존재하는 다양한 혼합경제조직(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그것이다.
유럽식 사민주의 모델은 계급간 타협을 가능케 했던 제도와 규율, 세력간 균형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남북간 통합을 고려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에서 융통성 있는 재정운용이 어렵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반도경제론’은 동아시아 모델을 개선해서 개방적 국제관계에 적응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환경을 구축, 일본형 모델과 중국형 모델을 뛰어넘는 ‘더 좋아진 동아시아 모델’을 형성하려는 전략으로 분단체제인 우리 현실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한국형 사회민주주의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한반도경제론’은 형성중인 담론으로 미시적 차원의 정교한 분석과 이론구성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한반도경제론의 경제제도 구상을 정리한 것이다.
[한반도 경제의 경제제도 구상]
1. 한반도경제 비전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는 일전에 새롭게 형성해야할 질서로 ‘한반도경제론’을 제기한 바 있다. 문제의식은 그간의 일국주의 계급주의적 전망은 현실에 부적합하므로, 국민국가와 그 아래의 지역, 민족국가 그리고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좀 더 넓은 지역을 함께 포함하는 복합적 공동체를 상상해보자는 것이었다. 한반도경제 비전은 과거의 경험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판단함으로써 미래의 비전을 구성하자는 전략이다. 미래의 ‘한반도경제’를 만드는 데, 과거의 노무현 정부 정책을 남의 일 보듯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는 ‘한반도경제’를 구성하는 요소인 자원배분(allocation), 조직(organization), 제도환경(institutional environment)의 세 가지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자원배분 문제는 가격 수량을 결정하는 연속적이고 일상적인 미시경제 문제이다. 자원배분의 변화를 압박하는 힘이 쌓이면, 제도의 변화를 가져온다. 제도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거버넌스와 제도환경에 관한 것이다. 계약에 따라 구조화 되는 조직구조가 게임을 운영하는 거버넌스의 문제라면, 제도환경은 재산권, 국가조직, 사법부, 관료제 등 게임의 규칙에 관한 문제이다.
2. 자원배분
1) 소비자경제 : 안전성과 분권화
촛불집회의 의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안전성문제에 대한 소비자 정보의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정보화를 통하여 쉽게 결집할 수 있게 된 소비자들은 시장이 안전성을 보장하는데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보 흐름의 확대는 분권화된 의사결정비용을 크게 낮추는 힘으로 작용한다. 분권화는 분산된 지식을 더 잘 이용하게 해주며 하부단위의 의사결정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정보화와 소비자 경제의 확대는 이러한 분권화의 이점을 더욱 증대 시킨다.
물론 분권화가 꼭 능사인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이 분산되면, 그에 수반하여 결정주체의 기회주의 행동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고, 여러 의사결정을 서로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며, 중앙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며, 분권화의 적절한 수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보경제의 확대와 소비자의 진출은 분권화의 수준을 좀 더 높이는 것이 유리해지는 쪽으로 거버넌스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2) 거시경제 : 성장과 안정
성장지상주의는 한국의 관료사회의 내재화된 관성이었다. 관료세력들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계속 주도했고 이런 정책은 내수경기 부진과 결합하여 양극화를 심화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유동성 팽창으로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집권세력의 성장지상주의를 부추김으로써 그 위험은 더욱 커졌다.
세계화가 진전되고 불확실성이 증대된 경제 환경에서, 자원배분에 있어서 종래 같은 방식의 정부개입이 의도한 효과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관료들은 기존의 시스템을 변경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새로운 적응이 이루어지려면 적절한 변화방향의 설정과 관료제 밖의 정치세력과 정책집단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 거시경제 운용에서 특별한 정책비전이나 방향을 내세우면, 자칫 현실과 유리된 고집이 될 수 있다.
굳이 원칙을 말한다면, 거시경제의 위험과 변동성을 적절한 수준에서 안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모든 경제구성원이 패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변화와 이행의 시기에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여기에는 특히 고통이 집중되는 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진보개혁세력에게는 서민대중의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미세조정의 ‘능력’이 또한 중요하다.
3. 조직
1) 기업경제
노무현정부의 조직문제에 관한 어젠다는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혁신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지역’이었고, 중요한 조직형태라고 할 수 있는 기업과 공적부문은 오히려 ‘혁신’의 공백상태에 있었다. 특히 ‘권력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며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회피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혁신’이라는 용어는 허울만 남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기업체제 개혁에 대해 뚜렷한 원칙을 갖지 못하고 타협적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분식회계로 천문학적 부실을 숨긴 SK글로벌을 계열사들을 동원하여 회생시키기로 결정했고 카드채 문제도 관치금융을 동원하여 유동성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했다.
경제이론상으로, 현실에서는 통합(integration)을 통하여 기업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재벌체제는 총수가 자신의 지분 이상으로 재산권을 행사하여 경영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원천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재벌총수가 작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에서 주인 역할을 하며, 그 권한을 세습하는 것은, 거래비용 감소를 통한 교환의 순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상적인 협약이라고 볼 수 없다. 원론적으로, 재벌체제는 잘 정립된 재산권체제가 아니다.
재벌기업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급격하게 개혁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은 참작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개혁을 회피하거나 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식의 논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재벌기업을 더 많이 이해하고 관용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개선과 발전의 길에 나서는 유인을 삭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재벌기업을 정상적인 발전의 길에 들어서도록 하는 것은 한국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이 모든 문제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은 아니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가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재벌기업이 꼭 한반도경제 영역에서 활동하고 그 구성원들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한 기업으로 발전할수록 국내산업과의 연관효과와 고용효과도 약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한반도경제에서는 대다수 민중의 삶과 관련된 중소기업이나 혼합형 조직의 혁신적 발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국내자본이든 국외자본이든 대기업이 중소형 경영체의 발전을 부당하게 억압하지 않도록 하는 ‘공정’한 경쟁과 협력의 규칙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공공부문
노무현정부에서 의제화되지 않았던 공기업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적인 정책사항이 되었다. 즉 공기업 개혁의 방안으로 매각과 통폐합을 추진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이라고 하는데, 거버넌스 재구조화를 위해서는 정교한 준비가 필요하다. 치밀한 준비 없이 공기업 민영화를 졸속으로 처리할 경우, 사회적 효율성의 증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공유자산의 사적 침탈만으로 귀결되고 만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거시경제 여건 속에서, 공기업 자회사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정부 보유지분을 무리하게 시장에 매각할 경우, 주식시장에 충격을 주고 시장 인프라를 약화할 수도 있다.
공기업 민영화의 본질을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만능주의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민영화 반대 - 이를 ‘사유화 반대’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이다 - 가 진보개혁운동이 지향하는 절대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기업이냐 사기업이냐 하는 것은 특정 재화와 서비스을 다루는 데 어떤 조직형태가 효과적인 경제조직인가 하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업이라는 조직형태는 정밀한 감독을 위해 장기에 걸쳐 거래를 안정시키는 계약의 일종이다. 이 때문에 일회적인 시장거래에 비하여 인센티브의 집중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관료제의 비용 부담이 생긴다. 이러한 기업 거버넌스의 단점은 공적 관료의 형태에서는 더욱 커지므로, 기본적으로 공적 관료제는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조직형태이다. 물론 어떤 거래의 경우에는 공적 관료제가 이를 조정하는 데 더 적당한 경우가 있으나, 이것이 ‘과다사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국가’사회주의의 경우는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으며 관료제의 비용이 막대한 조직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복지‘국가들도 각각의 구체적인 사정에 기초해서 체제의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 재정정책의 효과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큰 정부‘ ’증세‘ 담론이 꼭 진보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안정성을 더 중시하고, '적절한 규모의 정부’ ‘꼭 필요한 정도의 세금’을 운영한다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3) 혼합형 조직의 발전
고전적 기업이나 주식회사 같은 투자자 소유 기업은, 협업과 분업을 수행하기 위해 인류가 발견한 매우 우수한 조직형태로 평가된다. 주식회사 모델이 주주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은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주주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목표 하에서 다른 이해당사자들과의 계약을 체결하여 그들에게 수익을 제공한다. 주주를 포함하여 노동자, 하청업체, 소비자, 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이익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해관계자 모델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여러 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메커니즘을 이론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투자자 소유 기업만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형태는 아니다. 현실에서는 시장과 기업 사이에 여러 형태의 혼합형 조직(hybrid organization)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현실의 추세는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서 계약형태가 다양해지고 일원화된 소유제 구조에서 탈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예를 들면, 하청계약, 서플라이체인ㆍ유통 체널 등 기업 네트워크, 프렌차이징, 집단상표, 파트너쉽, 협동조합, 기업동맹 등 혼합형 조직이 확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직형태로 협동조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은 투자자가 아닌 생산자-소비자가 소유자인 조직형태이다. 협동조합은 ‘모호하게 정의된 재산권’ 때문에 인센티브 문제를 발생시키며 이는 협동조합 조직의 운영비용을 크게 증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자와 조직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 ‘신뢰’의 면에서는 협동조합이 투자자 소유 기업에 비해 우수할 수 있다. 협동조합 등 혼합형 조직은, 일반적인 기업에 비하면 통제의 정도는 낮고 자립의 정도는 높다. 소비자의 요구는 기업이나 농장으로 하여금 식품안전성에 대한 더욱 많은 자원을 배분하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계약과 인증된 안전시스템이 폭넓게 도입될 수 있었다.
한반도의 경우, 소비자의 품질과 안전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통합의 추세에 따른 경제조직 차원의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협동조합이 지닌 ‘신뢰’의 강점이 발휘될 수 있는 더욱 집중화된 조정 형태를 발전시킴으로써 조직의 거래비용을 감소시켜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고양된 소비자의 영향력은 투자자 소유기업의 운영방식을 일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촛불집회의 진행과정에서 쇠고기 문제를 넘어 좀 더 보편적인 소비자운동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나타난 것은 의미심장하다. 소비자운동이 활성화 되고 제도화 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한 압력이 될 수 있다. 이는 각 경제주체들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정부가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각종 규제의 권장 또는 금지사항들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운동은 투자자 소유 기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법치의 제도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한편, 좀 더 사회적이고 진보적인 경제형태를 조직할 수 있는 각성된 시민을 형성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소비자운동은 또한 사회적 기업(Social business)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직될 수도 있다. 사회적 기업은 기존의 투자자 소유 기업과 동일하지만 이윤극대화 대신 사회적 혜택을 우선한다는 원칙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한반도경제에 주어진 과제는 경제의 통합과정에서 효율화와 격차해소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경제조직들에서 역동적인 상호변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여러 조직형태가 창의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투자자 소유 기업과 국가가 빈곤과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형태로 협동조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이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4. 제도환경
1) ‘지역주의’의 실험
김대중 정부는 위기극복의 과정에서 영미형 모델의 요소를 상당부분 도입했으나 복지제도의 기본 골격을 수립하는 데에는 유럽형 모델도 참조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도 이러한 '혼합형' 모델의 추진을 기본적으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이 통합적이고 일관된 비전과 정책체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자신들의 비전과 전략은 '동반성장론'인데, 그 기본요소는 혁신주도형 경제, 일자리 낳는 성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확장과 선제적 복지투자 등이다(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2008). 그러나 이러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빨리 잡아도 2006년경이므로, 이러한 논의가 실제 정책집행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노무현정부의 정책전략으로 좀 더 의미있는 것은 집권초 주요 정책의제로 내세운 '동북아시대'와 국가균형발전'의 구상이다. 이는 글로벌화된 국제환경에서 일국 정부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모델 형성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정책들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의 동북아구상은,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는 지향만을 제시했을 뿐, 정책과제나 추진체계는 국민의 정부의 '동북아비즈니스중심국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즉 집권초에는 동북아구상을 남북한 평화ㆍ번영 정책의 기조 위에서 전개했으나, 구체적인 정책추진 단계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경제와 외교ㆍ군사ㆍ안보 분야로 구분하고, 다시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구분했다. 결국 새로운 지역주의 정책모델은 실험되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현실에 적용 가능한 지역주의의 이념과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관료제가 주도하는 정책체계로 흡수되고 말았다.
이는 꼭 노무현정부의 탓만은 아닌데, 진보개혁진영 스스로가 새로운 정책체계에 대한 인식을 체계화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래의 발전국가 모델을 수정ㆍ보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을 담당하는 미시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경쟁 일변도의 구도를 혁신하는 유력한 방안 중 하나가,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고 기업과 혼합형 조직이 함께하는 '지역'을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다. 즉 종래의 발전모델에 더하여, 한편으로는 '넓은 지역'(region)의 연대와 지역통합이, 다른 한편으로는 '좁은 지역'(community), 즉 지역사회와 주민조직이 생활기반을 분담하는 기초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2) 동아시아 모델의 '개선'
동아시아 모델은 일본, 한국 등의 발전과정을 유형화한 것이다. 그 에센스는, 급성장과 불평등도의 저하라는 두 가지 결과와, 농업의 역동성, 수출확대, 인구구조 변화, 높은 저축ㆍ투자율, 인적자본 구축, 높은 생산성의 여섯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높은 저축투자율을 가능케 했던 금융억압적 상황이 금융세계화로 더 이상 잘 기능하기 어렵고, 각국 단위의 수출확대 정책이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국제규범과 충돌한다. 기술의 형성과정에서 이제는 모방을 통한 '추격'의 경로보다는 비약의 경로가 많아지고 있다. 또 가혹한 경쟁으로 성장의 성과에 비해 삶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모델에서 돌연히 이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쨌든 과거로부터 계승된 규칙은 현재와 미래의 제도 형성에 상당한 제약이 되며 이 경로를 너무 급진적으로 수정할 경우 많은 비용과 고통을 발생시킨다. 한반도 분단체계는 내부에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데, 경로의존(path dependence)은 현재와 미래의 제도 구축에 상당한 제약이 될 것이다. 진보개혁진영 일각에서는 유럽형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한국경제에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논의에는 기존 네트워크의 외부성을 과소평가하는 오류가 있다. 순이익을 계산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는 비용이 들지 않는 절대적이고 우월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로의존을 고려하여 집행(implement)의 비용과 그에 따른 순이익을 정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변화 속에서 동아시아 모델은 여러 가지 한계에 봉착해 있지만, 경로의존의 제약을 고려할 때, 기존의 동아시아 모델을 전면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식은 동아시아 모델의 '개선'(improvement), 즉 '더 좋아진 동아시아 모델'(An Improved East Asian Model)을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서 '개선'의 핵심요소는 개방적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사회적 연대성을 실현하는 제도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남북 분단체계의 경로의존의 제약을 완화하면서 기존 동아시아 모델의 압축적 성격을 완화하고 공평성과 생태적 가치를 발전시키는 과제를 포함한다. 그러면서 남북한 내부에서 정치적 안정과 잠재적 경제이익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비인격적 교환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진화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동아시아는 인구압이 세계 어느 곳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고용과 농업 규모를 확보하고 필요한 사회정책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고도성장보다는 경제의 안정성과 생산성 제고의 목표에 더욱 많은 가치를 배분해야 한다. 거시적 안정성과 적정한 성장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동아시아 역내의 교환관계, 동아시아와 미국 간 교환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종래의 동아시아 모델의 핵심요소는 특정 제조업을 보호ㆍ육성하는 산업정책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산업을 특정해서 지원하는 방식이 통용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점진적 개방전략의 전제하에서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는 사회적 투자를 주요 수단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발전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비스업과 농업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서비스산업은 추격발전이 쉽지 않고 시장실패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급진적인 서비스경제로의 이행보다는 제조업에 기반한 점진적인 서비스산업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농업은 시장수요에 탄력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잡으면서 다양한 협동조합의 발전과 친환경적 방향으로의 생산구조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3) '87년체제'의 심화와 남북 경제통합
'한반도경제' 형성의 핵심과제는 한반도 차원에서 경제적 거래비용을 줄이는 제도가 출현하는 것이다. 즉 남북한 내부에서 제도개혁이 진행되면서 남북한 경제통합과 연계되는, 통합과 개혁의 동시진행과 연계인 것이다. 이를 좀 더 보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민주적 입헌체제'의 공고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비로소 입헌체제로 진입하게 되었지만, 한국의 '87년체제'는 아직 불안정해서 공공선택을 규율하는 제도적 진화를 가져오는 역사적 통과점이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87년체계'가 불안정하고 '한반도경제'의 전망이 불투명한 것은, 이들 체제를 구성하는 세력이 제대로 정렬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그 세력들 간에 계약 또는 협약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제도적 질서가 마련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세력이 존재해야 하는데, '87년체제'는 조직화된 세력들에 뒷받침되는 안정적 체제는 아니었다. 재벌체제는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배력을 지니고 있고 정상적인 기업조직의 활동공간도 여전히 제약되어 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이 기존의 조직력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동안, 혼합형 조직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87체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경제사적으로 의미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비인격적 교환을 보장하고 엘리트들에게도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조직과 혼합형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 사이의 제도적 협약을 이루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그리고 남북경제통합은 '87체제'가 민주적으로 확대되고 공고화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는 대체로 '혼합적'인 제도의 발전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하여야 경제적 거래비용과 통합과정에서의 실패자를 줄일 수 있다
5. '새로운 진보'의 경제체계를 향하여
최근 경제체제의 저변에서는 불확실성의 증대, 정보경제의 확대, 소비자의 진출 등 의미심장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질서', 즉 새로운 경제조직과 제도환경을 형성하는 영향력이 축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은 조직내에서의 분권화 수준을 좀 더 높이는 것이 유리한 쪽으로 힘을 축적하고 있다. 소비자의 안전에 대한 요구의 증가는 조직 내외의 정보 소통, 즉 '신뢰'를 증대하는 데 용이한 조직 형태를 선호하도록 자원배분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원배분상의 변화는, 경제조직과 제도환경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할 필요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질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까? 필자는 그것이 시장, 기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혼합형 조직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시장과 기업의 조직형태가 지금보다는 더 발전해야하고, 남한에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혼합형 조직 형태의 비중을 높이고 그 안에서 협동조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기업이 뚜렷한 역할을 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시장이나 기업, 어느 한 형태가 극단적으로 지배하는 일원화된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조건에서 다양한 조직형태가 공존하는 다원적 상태를 의미한다. 필자는 이를 '중도(中道)'의 경제라고 말한다.
새로운 질서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역사상에서 보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이루어지며 과거에 제약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방향은 유일한 균형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복수의 경로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진보'를 사전적으로 정해진 유일한 경로를 목적론적으로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사회는,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는 세계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실험, 작용과 반작용을 포함하는 적응을 통해 냉혹하고 무자비한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진보’를 ‘진화’의 의미로 이해한다.
체제를 구성하는 행위자들은 때로는 이타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이기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체제로 가는 별다른 지름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진보'는 적응에 작용하는 두 개의 힘을 직시해야 한다. 즉 환경에 적응하려는 힘과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힘에 기반하여 한반도 경제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한반도경제의 미시적 기초가 '중도적=혼합적'경제조직ㆍ제도이며, 이는 경제주체들의 '진보=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남북한 경제통합과 총체적 개혁을 수행하는 조직ㆍ제도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경향성", 그것을 '새로운 진보'의 경제체제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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