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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현장파! 정치적 사장(死藏) 위기에 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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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800) | 추천 (0) |점수 (0) | 2008-10-22 14:49:41 김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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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현장파! 정치적 사장(死藏) 위기에 몰리다 나는 1995년 4월 대우자동차에 특채로 들어가면서 노동운동판을 떠났다. 아니 훌륭한 산업역군이 되어 훌륭한 회사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 내가 진짜로 잘 할 수 있고, 시대가 요구하는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모든 잡생각(?) 접고, 그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1999년을 전후한 몇 년간 대우자동차와 대우그룹의 파산-구조조정-그룹 해체-해외매각을 계기로 몇 년간 접어두었던 잡생각(?)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상식에 비추어 너무나 황당한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가경영 담론(잡생각)을 다시 붙잡고 뒹굴게 되었다. 그렇게 한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단행본을 4권을 냈다. 책 급의 보고서와 goodpol.net에 싣는 수준의 짧은 글을 합하면 원고매수로 단행본의 최소 4배는 쓴 것 같다. 첫번째 책은 2001년에 낸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다. 두번째는 2004년에 낸 [한 386의 사상혁명], 세번째가 2007년에 낸 [진보와 보수를 넘어], 네번째가 [희망한국프로젝트(공저)]다. 그런데 책이 다루는 주제는 점점 더 관심을 가질 만한 독자층이 늘어는 쪽으로 왔다. 대우자동차-> 386의 사상-> 진보와 보수->희망한국으로. 물론 연구 고민의 폭과 깊이가 더해지면서 내공도 점점 더 깊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판매 부수는 점점 더 줄었다. 언론의 반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0년간 꽤 많은 짧은 글을 쓰고, (자동차 산업 전문가로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책도 내고, (저자로서)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일간지 서평이라도 받아 내려고 작업을 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양이었다. 솔직히 의외였고,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곧바로 그 이유를 알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진지하게 탐구하고 주장하는 내용과 내 사회적 포지션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책은 그 내용을 높이 평가하는 내공있는 학자 한 두 사람만 있어도 의미를 갖는 학술 논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실현할 힘이 있어야 의미를 갖는 사상, 이념, 정책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사상, 이념, 정책 담론은 사회적 권위나 권력이나 조직과 결합해야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첫번째 책의 반향이 컸던 것은 바로 대우자동차와 자동차 산업을 가장 잘 알고 회사를 책임질 사람들이지만, 여간해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내부자들의 목소리 였기 때문이다. 실제 첫번째 책은 내가 골방에 앉아서 문헌을 뒤적여서 쓴 책이 아니라, 수많은 내부자와 이해관계자들을 만나서 배우고, 토론하고, 연구한 성과를 모은 책이었다. 다른 세권의 책은 학계나 정계나 경제계에서 어떤 포지션도 갖고 있지 못한 일개 서생의 목소리 이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론의 외면이 이해가 되었다.
이를 확인하면서 나는 새삼 세월과 나이와 사회적 포지션의 중요성을 느꼈다. 정치 시장에서 통용될 경력을 미처 만들지 못한, 386 진국(?)들의 정치적 위기가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리 없이 다가온 세월-이는 진입 장벽을 조용하지만 확실히 높여놓는다-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자화자찬인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 386 세대 중에서(475세대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치열하게 역사에 응답했던 사람들은 현장으로 간 사람들이었다. 특히 공장이나 탄광으로 간 사람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위장취업자였다. 교회, 농촌, 시민(환경)운동을 하러 간 사람들은 위장취업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대학 바깥에 운동 공간이 별로 없던 시절, 대충 70년대 학번들과 386 초반 학번들에게는 최고의 실천형태는 현장에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동 물을 좀 먹은 사람으로서 일찍 교사로 임용된 사람들,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취직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현장 간 사람을 도우거나, 자신도 기득권을 버리고 조만간 현장을 가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고 살았다. 마치 요즈음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여건만 되면 전문 선교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듯...... 당연히 별로 익숙하지 않은 노동을 하느라 프레스에 손이 잘리기도 하고, 용접불똥에 살이 타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기술을 배우러 들어간 조그만 공장에서 어이없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장파들은 현장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였다. 20대 대학생 출신자들의 감각으로 보면 1980년대 현장은 너무나 열악했고(주로 열악한 곳만 채용을 했으니), 그래서 작은 불꽃만 있으면 활활 타오를 마른 풀밭처럼 느껴졌다. 반면에 전두환 정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극심하여 거리의 정치공간이 넓었기에 생각과 행동이 쉽사리 가두화 되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인상 투쟁을 하는 것조차 경제주의, 개량주의로 치부될 정도였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을 통해 노동자, 학출 현장파들의 생각과 행동의 가두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사람이 김문수와 심상정이다) 또한 몸 담은 현장 자체가 산업 구조조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소기업이거나 비교열위 산업인 경우가 많아서 없어지거나 매우 쪼그라들어서, 우직한 현장파들도 꽤 있었지만, 그곳에 뼈를 묻으려 해도 묻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현장노동을 하는 것인지 노동운동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쨌든 386세대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현장파들은 동세대들이 석, 박사를 하고, 유학을 가고,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로 한창 열심히 일할 시기에, 공장 노동을 하거나 조직 사업 등을 하느라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하여 386 현장파들이 청춘을 바쳐 수행한 노동운동, 정치조직 운동, 사상운동은 현재의 이들의 삶과 무관하거나 적어도 별로 의미있는 자산이 아니다.(하지만 청년운동, 시민운동, 제도권 정당이나 교회에서 활동을 한 사람들은 좀 나은 편이다) 386 현장파들이 청춘을 바쳐 수행한 운동은 대부분 지리멸멸되거나, 용케도 민주노총, 전교조, 전농, 민주노동당 등으로 조직, 투쟁 성과가 약간은 계승 되었을지라도 현장파들이 견지하던 정신은 거의 계승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현장파들의 정신은 노동운동이 중소기업과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진보/개혁의 선봉부대 내지 주력군이 되는 것이었지, 이들이 재벌, 토건족, 지방토호, 각종 직능협회들과 비슷한 반열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등극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념, 조직, 문화로 볼 때 별로 진보적이지도 개혁적이지도 않은, 확실한 소수파 정당으로 고착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현장파들이 가진 이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들이 현장에 있을 때 사귄 선진노동자들과 친밀한 교류를 하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래저래 현장파들에게 20대와 30대 초반은 사실상 인생의 공백이 되다시피하였다. 물론 이들의 현장 체험과 좌절의 경험은 이들을 인간적으로, 사상적으로 성숙시켜 준 측면은 있다. 이는 활용여하에 따라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민족사적으로 엄청난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간혹 송영길이 선거 유세 때 1986년 르망공장 용접공 생활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진정성을 어필하는 배경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내 주위에는 40대 초,중반이 되어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이 좀 있다. 경력, 능력 여부에 상관없이 취직은 어렵다. 그래서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업아이템을 몇 개 붙잡고 사업 타당성을 찬찬히 따져보면 무슨 업이든지 10년 이상의 경륜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어 뵈는, 먹는 장사도 경쟁력있는 독자 가게를 하려면 최소 10년의 올인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잘 나가는 음식점은 대개 어머니, 할머니, 시어머니, 시할머니 등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노하우가 있다. 그렇다면 이는 30년 혹은 100년 묵은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공이나 노하우가 없는 사람들은 대개 프랜차이즈로 눈을 돌린다. 가만히 보면 10년이상의 내공이나 노하우 없이, 약간의 자산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내는 것 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 당연히 프랜차이즈에는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가맹점을 열 가게를 임대하고 인테리어를 꾸미는데 제법 돈이 들고, 원료(물품)도 본사로부터 비싸게 공급 받으며, 좀 된다 싶으면 지근거리에 생길지 모르는 다른 가맹점을 걱정해야 한다. 잘 될 수록 우월적 지위에 있는 본사의 독점적 횡포를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한 두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프랜차이저는 거대한 약탈기구라면서 증오한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건 역사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응답했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정치판도 이와 다를리가 없다. 아니 이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판은 철저히 프랜차이즈 사업인지도 모른다.
가게나 벤처기업을 시도하거나, 변호사, 의사 사무실을 낼 때는 곧 죽어도 독자 브랜드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정치판으로 오면 김대중, 김영삼, 박근혜, 한나라당, 민주당의 프랜차이저 가맹점을 너무나 당연시 한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의 정치 시장에서는 이들의 프랜차이저 가맹점을 하지 않고, 독자 브랜드를 고집하던 모든 가게들이 사실상 망해버렸기 때문이다.(민노당은 후미진 골목에 낸 라면집이라서 버티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판에서 오래 굴러먹은 고참일수록 아무리 후져도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프랜차이저 외에 달리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김영삼, 김대중의 대를 잇는 확실한 본사인 박근혜와 10년 이상 당명을 바꾸지 않고 유지되는 한나라당을 보면 보수 동네에서 독립 가게를 새운다는 것은 지금도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진보, 개혁동네에서 민주당 프랜차이즈 가맹점 전략은 유효할까?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하나는 퇴색되지 않았지만, 재산을 많이 모은 것도, 전파를 많이 탄 것도, 유명 대학의 석학 자리를 차지한 것도, 지난 10년 동안 정당과 정부에서 괜찮은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닌 386 현장파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대 중요 선거 결과와 민심의 흐름으로 본다면 한국의 정치 지형은 한나라당 수계와 민주당 수계가 커버하지 못하는 거대한 수계가 있다. 이 거대한 수계의 물이 모이는 강줄기가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결정되어왔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오랫동안 이 수계에 흐르는 비는 민주화 운동 세력과 민중 운동 세력이 샛강으로 일부 받아내었다. 때로는 정주영과 박찬종이 샛강으로 일부 받아내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이 수계에 흐르는 민심의 강물이 이인제, 정몽준을 기웃거리다가 후보단일화를 계기로 호남 수계와 합쳐져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 2007년에는 이 수계의 대부분의 강물은 영남, 보수 수계로 흘러갔고, 일부가 문국현이라는 샛강으로 흘렀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애초부터 수도 서울로 흘러오는 강이 아니라, 임진강이나 동해안 쪽으로 흘러가는 개천일 뿐이다. 2007년에 한나라당과 문국현으로 흘러갔던 강물은 지금 다시 증발하여 엄청난 비를 머금은 구름이 되어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민노당 수계로 내릴 조짐은 별로 없다. 그래서 지형으로만 보면 거대한 강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는 황량한 평원이 되어 있다.
한편 민주당은 한때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자랑하다가 절반으로 쪼그라 들었기에 엄청난 정치 예비군을 안고 있다. 이는 프랜차이저 본사로서 매력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맹점을 하려는 사람은 줄을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작 심각한 것은 삐까뻔쩍한 세속적 성취를 이루지 않은 386 정치신인이 천신만고 끝에 민주당 프랜차이저 가맹점권을 따낸다 하더라도 민주당 수계에 흐르는 수량을 별로 늘릴 수가 없다는데 있다. 다시말해 당의 지배구조, 조직기반, 조직문화(영혼) 등으로 볼 때, 갖 가맹점권을 따낸, 수혈된 정치신인들의 활약(?)으로는 거대한 구름으로 떠도는 민심을 민주당 수계로 내리는 비로 바꿀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1997년과 2002년의 성공신화를 연출하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갖지 못한 강력한 매력과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매력과 가치는 그리 심오한 것도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다. 민주화 운동, 노무현, 문국현, 이명박, 오바마에게 환호한 대중의 심리를 찬찬이 뜯어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경영 경륜(실력/전문성), 진정성, 도덕성, 보수와 진보 이익집단에 짓눌린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의 기회, 진정한 자유주의/시장주의 정책, 사민주의의 합리적 핵심, 철저한 주권재민의 원칙 등 일 것이다.
이는 벤처투자, 부동산투자 하듯이 몇몇이 팀짜서 종목 잘 골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네 식당도 10년의 올인과 노하우가 필요한데, 국가경영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를 각오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국정의 다양한 분야를 커버하는 튼실한 전문가 네트워크와 전국을 커버하는 활동가 조직없이 한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지난 2006~2007년 시기, 위기가 기회이던 시절, 386 대표 정치인들은 자신의 고유한 빛을 내지 못하였다. 그 좋았던 시절에 정치사상(국가개조 노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무슨무슨 파, 예컨대 사회투자국가파, 전투적 복지국가파, ‘청년을 위한 기회파'(공평파) 등을 만들지 못하였다. 그냥 좌파, 민주파, 진보개혁파로 남았다. 게다가 배지를 달았건 못달았건, (나를 포함한) 정치권 386들은 과거 운동권의 대표 상품이자, 오세훈에게도 있는 낭만주의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386 중에 문국현이 내 지른 '허경영'적 공약과 미성숙한 리더십에 '탁월하다'며 무릎을 친 사람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목과 착각의 근원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정치를 벤처 주식 투자처럼 여기는 풍토도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하다.
그렇기에 이대로 가면 특이한 역사적 상황이 빚어낸 386의 정치적 힘과 경륜은 민주당 3명의 최고위원과 원희룡 등에게 달려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의 한계는 너무나 명백하다. 한국은 모순과 부조리가 너무나 강고하고 복잡하기에 잘 준비된 정당이나 정치조직 없이는 성공적인 국가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86을 포함한 민주화운동 세력이 정당을 만들거나(주도하거나) 문화를 만들거나 사상이념을 만들었으면, 대표 선수들 몇몇이 낙마해도 그 영혼을 계승한 다른 지도자(475일 수도 있고, 70~80년대에 태어난 사람일 수도 있다)에 의해 그 꿈과 이상과 정서가 계승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만들지 못한 이상 이들 대표 선수들의 낙마와 더불어 386은 역사의 뒤안으로 완전히 밀려 갈 수 밖에 없다.
역사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응답했던 세대(386)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응답했던 일군의 사람들(현장파)이 정치적으로 사장된다면, 민족사적으로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내 놀다가, 아니 열심히 돈을 벌다가 기회를 보아서, 문국현의 등에 업히기 위해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듯이, 2012년 즈음에 또 한번 누군가의 등에 업히는 방식, 즉 프랜차이저 가맹점을 꿈꾼다면 2007년을 또 한번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는 소리없이 다가와 뒤에서 덮치는 세월의 파도에 쓰러져, 그냥 흘려버린 지금 시기를 통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긴 호흡으로 독자 가게를 할 요량으로 국가경영 노하우를 쌓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386과 민주화 세력이 후대를 위해 남겨야 할 최고 최대의 유산은 제대로 된 정당이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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