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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마지막 초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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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65) | 추천 (0) |점수 (0) | 2009-12-23 11:27:22 정보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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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마지막 초대장
정보연(도봉시민회 공동대표)
Home Rule이(우리 동네는 우리가 다스린다.) 가능한 지방자치 제도를 만들어 촛불을 동네로 불러들이고(첫 번째 초대), 거버넌스를 통해 촛불이 정치와 행정에 직접 참여한 다음(두 번째 초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유롭게 정치조직을 만들고 직접 선거에도 출마하는 것. 그게 초대장의 전체 내용이다. 이제 그 마지막 단계를 살펴볼 순서이다.
도봉구에는 시민운동가가 지방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된 사례가 많다. 1995년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출신의 최찬애의원이 당선되었고, 1998년 도봉푸른청년회의 추천으로 필자가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최찬애의원과 필자는 당시 민주당에 입당했고 내부 공천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도봉구 시민운동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선거 경험도 적었다. 하지만 2002년에는 김낙준, 추경숙 두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당히 당선되었다. 지역의 여러 단체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고, 지역 사정에 밝은 현직 구의원이었던 필자가 한몫 거들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들 시민단체 출신 의원들은 지역단체와 함께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도봉구의 개혁을 선도했다. 그건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하지만 선거법이 바뀌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러 가지 제도가 바뀌었지만 핵심적으로는 그 동안 공천이 배제되었던 기초의원 선거도 정당이 공천을 하게 되면서 시민단체 출신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여지가 크게 줄었다. 이전에는 모두가 무소속인 셈이라 주민들이 후보자의 자질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였는데 정당 공천이후부터는 어떤 정당인가를 먼저 보게 된 것이다. 한 시민단체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이창림 후보. 2006년 지방 선거에서 낙선하였지만 그 이후 3년 동안 정말 열심히 도봉구에서 주민 운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지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 아래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유난히 중앙 정부의 힘이 세고, 중앙언론이 이슈를 독차지하며, 특히 지방선거가 정권의 중간평가의 장처럼 인식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주요 정당 출신의 후보자들은 세배, 네배의 유리한 위치에서 선거를 치루게 된다. 제도가 바뀌고 치룬 2006년 지방선거에서 1,000만 서울시민을 대표하는 서울시의회는 한나라당이 전 의석을 싹쓸이 하였다. 타당은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오직 비례대표에 의지해서 몇석을 건졌을 뿐이다. 균형을 잃어버린 서울시의회는 임기 내내 의장선거 비리 등 각종 부정에 흔들리고 있다. 25개구의 구청장도 모두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그건 정상적인 선거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도봉구 시민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출마한 김낙준, 추경숙의원과 이창림후보는 모두 낙선했다. 비단 도봉구뿐만 아니다. 전국적으로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질이 부족해도 정당 공천을 받아 1번 혹은 2번의 번호를 부여 받으면 당선되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주민의 지지를 받아온 지역 활동가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주요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곧바로 정당이었기 때문에, 지구당 위원장들은 주민을 위해 뛸 사람이 아니라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성할 사람을 공천했다. 지역사회에서 거대 정당의 영향력은 급속히 강화되었고 그 만큼 지역의 자생적 시민조직이 정치에 개입할 여지는 줄어들었다. 지방선거란 측면에서 보면 지방자치가 10년은 후퇴했다.
정당정치도 필요하면 제약할 수 있다.
원래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결국 지방선거에서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행위가 가져온 결과는 부정적이다. 현재의 선거제도를 유지해서는 아무리 Home Rule하고, 거버넌스를 해도 절반의 성과를 얻기도 힘들다. 좋은 제도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고 좋은 사람들이 지방정치인이 되어야 제도가 가진 가능성이 다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을 시행한 근거는 정당정치의 활성화이다. 정당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수단이다. 그것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에 필자도 이견이 없다. 다만 정당정치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수단이듯, 지방자치도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더구나 시작한지 15년밖에 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더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가치이다. 만약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한 어떤 제도가 지방자치의 발전을 저해한다면 그건 한번 재고해 봐야 한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이 그렇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전국적 성격을 가진다. 특히 한국은 지역정당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법에 의하면 정당은 서울에 중앙당을 “둬야 하고” 전국 5개 이상의 광역시도에 시도당을 “둬야 한다.” 당연히 정당의 활동방식은 중앙적이고 전국적이다. 지역하고는 거리가 멀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정당은 중앙의 힘이 지역으로 내려오는 주요한 통로중의 하나이다. 즉 전국적인 정당은 기본적으로 지방자치와 상충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지방자치를 제대로 하려면 정당도 일부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처럼 중앙집중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은 양당제가 정착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정당으로 미국 정치의 대주주들이자 기득권자이다. 미국에서 “정치하겠다.” 하면 이 두 당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두개의 기업이 시장을 양분하고는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우세한 지위를 이용하여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가격을 조정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고,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시장이 가진 자율경쟁의 역동을 해쳐서 막대한 비효율을 발생시킨다.”
그때 반독점법이 작동한다. 시장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거액의 벌금을 물리기도 하고 필요하면 기업의 분할을 명령하기도 한다. 실제 스탠다드 오일, 아메리카 토바코, AT&T 등이 반독점법에 의해 제소 당해 수십개의 작은 회사로 분할되었다. 시장에는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으나 정치에는 그런 것이 없다. 실제 민주당과 공화당은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정치 시장을 왜곡하고 소비자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지방선거에는 Nonpartisan(무당파) 선거구란 것이 있다. 이 선거구에서는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출마가 가능하고 그저 자기 약력에 어느 당원이라는 것을 표시할 뿐이다. 더구나 독자적으로 정한 날에 선거를 치루기 때문에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지역선거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무당파 선거구는 두당의 독점적 지배력을 약화시켜야 지역 정치 시장이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만든 제도이다. 이렇게 정당정치란 것은 지고지순의 가치가 아니며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제약할 수 있는 것이다.
뉴저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악시 시장 코리 부커. 흑인빈민운동가였던 그는 1998년 시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마약 거래가 이뤄지는 시내 요지에 자동차 집을 설치하고 5개월 동안 천막생활을 한 톡톡 튀는 젊은 과격파이다. 만약 뉴악시가 무당파 선거구가 아니었다면 그가 시장에 도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묘안! 유권자단체
필자는 2006년 선거의 결과를 보면서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을 반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뭐든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라.”고 하는 것보다 말발이 약하다. 정당에게 정당공천하지 마라? 쉽게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좋은 대안을 발견했다. 부산대학교 김남철교수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지방선거참여를 위한 법적 과제”란 논문을 통해 참 설득력 있는 제안을 했다.
독일에는 유권자단체란 것이 있단다.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적 결사체”를 의미한다. 기존 정당과는 달리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고 지방선거에만 참여하는 조직으로 일정수의 지역 주민이 결사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관해서는 기존 정당과 완전히 같은 지위를 누리면 선거를 치른다. 번호도 부여받고 선거비용도 지원 받는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유권자단체들이 34.3%의 지지를 받아 주요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을 이기기도 하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미미한 득표를 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의 지지를 받느냐가 아니다. 기성의 정당들이 시민의 정치적 요구를 다 대변하지 못할 때 최소한 지방선거만이라도 주민들이 준정당적 조직을 결성하여 스스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2009년 1월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정례여론조사에 의하면 한나라당이 19.4%, 민주당이 9.5%의 지지를 얻었다. 무당층이 무려 64.9%이다. 기성의 정당 체계가 시민의 정치적 요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시민들이 정치적 선택지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결사를 만들도록 길을 열어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 최소한 지방선거만이라도 그런 길을 열어줘야 한다.
정당의 공천권을 제약하는 방식보다는 정당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지역의 정치적 결사를 인정하여 지방정치를 주민에게 돌려준다는 발상이다. 정당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도 할 말이 없는 묘안중의 묘안이다. 유권자단체는 촛불이 정치의 변방 지역에서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06년 도봉구의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도봉시민정치네트워크 무지개”를 만들었다.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새로운 지역정치를 바라는 열망만은 높았다. 독일의 유권자단체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면 무지개는 한나라당, 민주당 등 기성 정당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훌륭히 경쟁하였을 것이다.
386과 민주노총 그리고 그 다음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정치세력을 만들어냈다. 한축은 386이라 불리는 학생운동 그룹이고 한축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 세력이다.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386은 민주당에 결합했고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조직적 토대가 되었다. 이들로 인해 한국의 정치는 한단계 더 나아갔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것 같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계기로 386과 민주노총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그 정치적 신망이 약화되고 있다. 한국의 진보는 그 다음 세대를 키워야 한다. 과연 386과 민주노총 다음의 진보는 누구일까? 촛불이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성장할까? 지역에서 Home Rule과 거버넌스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어떤 계기로 정치 무대에 진출할까? 지역에서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정치에 진출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가 현명하다면 촛불로 대표되는 시민의 역동을 진보의 한 세대로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한 10년 후에는 전국 곳곳의 유권자단체들이 네트워크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세력으로 국민들 앞에 등장해야 한다. 그들이 386과 민주노총을 이어 진보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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