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토론 > 21C 진보정당방

|
![]() |
살아있는 강령을 만들려면, 한국사회의 핵심을 짚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라! |
![]() |
조회 (1384) | 추천 (0) |점수 (0) | 2009-12-23 10:33:29 김두수 |
![]() |
국민참여당, 국민참여당3.jpg |
|
살아있는 강령을 만들려면, 한국사회의 핵심을 짚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라! - 국민참여당 정강정책 전문가 토론회에 다녀와서
김두수(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노항래 국민참여당 정강정책제정위원장으로부터 정강정책 정치 분야 초초안을 검토하는 토론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국민참여당 창당에 앞장 선 사람들 중에는 우리연구소의 이사 출신들이 꽤 있다. 연구소를 처음 만들 때, 민주화 20년, 특히 노무현 집권 5년을 철저히 성찰하고, 반성하여 집권 가능한 21세기형 진보정당을 창당하자고 합의를 봤다. 그런데, 창당파(적절한 명칭은 아니지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들은 지난 1년 동안 그 목표를 성취한 것 같지는 않는데 창당의 길로 매진했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나보고 “국민참여당에 합류하라”고 권하고 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부탁이 들어온 이상, 도와주어야지 하면서 참석을 했다.
17일(목) 밤7시에 당사에 가니, 조촐했다. 참석하기로 했던 몇 분의 교수님들은 개인사정으로 다음 주에 있는 토론모임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날 토론 자리에 이병완 창당준비위원장, 천호선 상임부위원장, 김영대 대외협력위원장, 노항래 위원장, 김주영 실장, 여성실무1명이 참석하고, 외부에서는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 미래발전연구원 김성환 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참석했다.
정강정책을 만들려면, 제일 먼저 무엇부터 인식해야 할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진단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여야 그 다음에 지향하는 사회를 도출할 수 있다. 현실의 토대와 관계없는 지향은 그냥 이상향일 뿐이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에 의하면, 한국에서 보수로 불리는 우파는 한국사회가 ‘작은 미국’이 될 것을 바라고, 흔히 진보로 불리는 좌파는 ‘큰 스웨덴’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쪽 사람들은 미국에서 유행한 것, 또는 유행되고 있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수입하려고 하고, 진보를 표방하는 동네는 주로 ‘복지’를 앞세우는데 대체적인 내용은 ‘스웨덴’ 방식이다. 미국모델과 스웨덴모델 사이에 수많은 모델들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편과 스웨덴편으로 나뉜다.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한국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 모두 공통적으로 정말 한국 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떤 발달 단계에 있는지, 등 내외적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참여당’의 전문과 본문은 한국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정확한 진단이 부족해 보여, 한편으로 아쉬움을 느낀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분석할 때, 먼저 단순화를 해봐야 한다. 그래야 핵심이 들어난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극도로 복잡하고, 얽혀있는 미로 같은 사회지만, 그런 사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면 그 비전은 신뢰할 수 없는 비전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의례적인 강령은 유권자의 심장에 강력한 떨림과 머릿속을 강타하는 강력한 울림을 가져오지 못하는 ‘죽은’ 강령-정강정책-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한국은 압축 성장으로 표현하듯이 지금도 격동하는 사회다. 지난 50년간 너무나 빠른 변화의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었는데, 세계화의 시간대가 겹쳐지면서 한편으로는 중첩되고, 또 한편으로는 진행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돌아가는 레코드의 판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중심부의 사람들은 걸어가는 속도로 적응할 수 있지만, 가장 주변부에 있는 사람은 전력질주를 해야 그 돌아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제 극단의 주변부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중심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속도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우리사회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상층과 하층으로 분리되는 이중사회, 격차사회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계급 계층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은 공동체와 공화국의 가치를 우선하는 ‘공공선’을 내팽개치고 사익추구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갈 길은 모르고, 그 길을 인도할 지도자를 잃은 대중은 ‘개인의 독점욕망’과 ‘공공의 공동 풍요’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이제 막 지나고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의 심리상태와 비슷할 것이다. 흔히 고민이 지독할 때는 “나도 내 자신을 잘 모르는”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상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모순덩어리 속에서 폭발하는 에너지들을 새로운 사회를 개조하는 힘으로 전환시켜내는 거대하고 위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으로써 포부, 그것이 강령으로 나타날 때, 희망을 가질 것이다.
어쩌면 객관적인 상황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아야 한다. ‘국민참여당’의 역사적 좌표를 가름해 보아야 한다. 국민참여당의 시원(始原)은 노무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국민경선에서 시작하여, 노무현 후보 지키기, 개혁당, 열린우리당으로 흘러간 정치사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래서 지금의 정치상황으로 볼 때, 국민참여당은 ‘탄생의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도 남는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친노정당, 친노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부정한다면 이상한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삶을 당원의 삶과 당의 정치적 실천을 규율하는 거울로 삼을 것이다. 국민에게 겸손하고, 불의에 눈감지 않으며, 국민과 함께 과오를 바로잡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정말 잘 한 것이라 생각한다. 친노정당이라고 사악한 언론에서 시비를 걸겠지만,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의 대의명분은 분명하더라도 정치적 실체를 인식하는 데는 냉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신생정당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창당의 초기에 그만한 패기와 배짱이 없어야 되겠는가? 하지만 정치현실에서 선거라는 관문을 지나야 하는 통과의례는 가혹하기 그지없다. 기존의 비례대표 선출방식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기 전, 2004년까지 도전자들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현실적 제약요소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 창당이라는 가슴 벅찬 결단과 동시에 당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련이 함께 올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선택받으려면 다른 당과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특히 지지기반이 겹치는 ‘민주당’과는 본의 아니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굳이 바둑에 비유하자면, 생사를 다투는 결정적인 수에서 첫 착수가 시작되면, 어쩔 수 없는 수순에 따라 자동으로 둘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신생정당 ‘국민참여당’을 국민 대다수는 집권할 정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스스로 위치를 설정한 좌표를 보아도 집권정당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이 객관적 실체일 것이다. 신생정당의 태생적 한계다. 그러나 다행히 2010년은 국회의원 총선이 아니라 지방선거다. 지방선거는 당선자 총 수가 3000명이 넘는다. 독립적 기반의 확보와 동시에 연합정치의 가능성이 병존하는 선거다. 이를 계기로 정치적 체구와 체력이 작은 정당으로써, 영리하게 지혜를 발휘하길 빈다.
국민참여당이 내세우는 표징은 ‘참여민주주의’와 ‘역동적 복지사회’다. 전문에서 “참여민주주의를 국정 및 사회 운영의 원리로 뿌리내리고, 국민의 민생복지를 살피는 역동적인 복지사회를 앞당겨 갈 것이다.”고 선언하고 있다. ‘역동적인 복지’는 본문 사회영역이나 경제영역에서 다루고 있고, 잘 모르고, 또한 나에게 자문을 구한 과제가 아니니, 여기서는 지나가기로 하고,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특히 ‘참여민주주의’는 당헌을 작동시키는 원리로 알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의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지향을 분명히 하는 것은 좋은데, ‘참여민주주의’의 한계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민참여당이라는 당명을 정할 때, 주권당원의 수와 투표에 직접 참여한 수를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참여’ 그 자체의 실상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창당의 지도부도 실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밑으로부터 참여가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공화국의 작동원리에서 보면, 병렬된 기관과 기관 간의 견제 등 옆으로부터의 견제도 같은 역할을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지나치면 부족한만 못하다.”는 격언이 있다. 국민참여당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하면서 동시에 만능이 아님을 인정하고 스스로 근신하는 자제심이 함께 발동되었으면 좋겠다.
각 정당의 정강정책을 비교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간에 비교해 보면, 정강정책의 차이가 확연했다. 민주노동당에게 만악(萬惡)의 근원은 ‘외세’였고, 진보신당에게는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 이들 당의 공통투쟁 대상은 신자유주의였다. 이 두 정당은 분명 좌파정당이다. 우리연구소가 연구해온 결과에 의하면, 노무현 참여정부시절에 드러난 뚜렷한 현상의 하나는 이념적 정책적 분화였다.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도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헷갈렸고, 특히 이념과 정책의 경계지점을 잘 몰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정책기조가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여정부 말기에 일어났던 정책적 혼선과 정치적 갈등,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고립은 진보개혁세력의 이념적 정책적 분화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진보의 과제영역에서 같이 해 볼 여지는 많지만, 좌파와 우파의 구분에서는 확연하게 분리되기 때문에, 이념과 가치의 연대와 연합에서는 함께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노회찬 신보신당 대표의 ‘진보대연합’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국민참여당과 민주당의 강령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친화성이 있다. 국민참여당의 지도부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국민들은 큰 차이를 못 느낀다고 하니, 좀 억울할 것 같다. 국민참여당이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면, 민주당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고, 국민참여당이 ‘민생복지’를 강조하고 있다면, 민주당은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남북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은 동일하다. 자세히 읽어보면, 분명 다르다고 하지만, 포괄적인 지향점에서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인 제안을 해 본다면, 우선 정강정책을 기술하는 방식에서 차별성을 확보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양당 모두 영역별 나열식으로 10개 정도에서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성을 못 느끼고 있다. 그래서 1단계로 하나의 주제에 철학적 원리를 기술하고, 2단계로 그 원리를 뒷받침하는 정책구현의 원칙을 밝히고, 3단계로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제시하는 3단계 구성을 제안해 본다. 일반적 명제의 선언형식으로 되어 있는 정강정책을 3단계 영역에서는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실천적 지침이 되고, 정책집행의 상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차피 강령을 1년마다 수정한다는 계획이 있다면, 절대불편의 강령처럼 고수하려고, 추상적 문장으로 장식할 필요가 없다. 지금의 강령처럼 일반적인 문구는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 현재 실천 가능한 지침을 기술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신생정당의 파격적인 변신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자면, 현 단계 대한민국의 정치적 과제를 제대로 설정할 것을 부탁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 쟁취한 시스템이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87체제’의 한계다. 20년 전의 설계회로에 의해 작동하던 정치체제가 위기상황에 왔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면서, 민주주의 기본원리에서 시작하여 공존 공영하는 국민통합의 나라에서 한 발짝씩 멀어져 가고 있다. ‘불확실성을 제도화’하는 것이 정치라고 하는데 오히려 더욱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미래로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생정당인 ‘국민참여당’은 낡은 ‘제6공화국’의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제7공화국’의 전망을 열어 가는 ‘개헌운동’에 앞장을 섰으면 한다. -끝- |
|
|
|
댓글 2개
엮인글 쓰기
|
|
|
| 1 | 2 | 3 | 4 | 5 | 6 | 7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