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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첫번째 초대장 - 지방자치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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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86) | 추천 (1) |점수 (5) | 2009-12-09 10:37:31 정보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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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첫번째 초대장 지방자치 혁명! 정보연(도봉시민회 공동대표)
지금까지는 미국의 지방자치에 대해서 연재했다. 그리고 이미 예고한 것처럼 이제부터는 한국의 지방자치에 대해서, 그 발전 방향에 대해서 2-3회에 걸쳐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부터 이어질 연재의 소제목은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의 역동을, 그 거센 참여의 열정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면 한국은 또 한 발 나아갈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연이어 이뤄낸 한강의 기적은 여기서 끝날 것이다.
1987년의 시민들은 광화문에 모였다. 지금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일 일이 가끔 있다. 하지만 평소에는 동네에서 모였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가 한발 더 내디뎌 나아가려고 하는 그 곳은 시민 이니셔티브의 사회이다. 시민 이니셔티브는 동네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빈 초대장에 이렇게 쓰고 싶다. “지역에서 새로운 세상을 직접 만들어 봅시다. 요즘은 좋은 세상을 외치는 것보다 자기가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사람들을 더 감동시키거든요. 시청 앞에는 가끔만 나가고 이제는 동사무소에서 만나요.”
필자는 “동네가 촛불에게 보내는 초대장”을 세 번 쓸 것이다. 첫 번째 초대장은 지방자치 제도의 변화를 담고 있다. 한국 지방자치의 계층과 유형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촛불의 에너지를 동네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거버넌스에 관한 제안이다. 필자는 “로체스터시”의 거버넌스를 우리 동네에서도 한번 해보고 싶다. 그것이 “민주주의 2.0”이고 진정한 “Government Of the People”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공공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기성 정당을 통하지 않고도 자신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쉽게 동네 선거에 출마하고, 주민을 바라보며 정치할 수 있는 제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성 정당만으로는 촛불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 오늘의 주제는 지방자치 제도의 변화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서울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여의도”다운 구상
지난 17대 국회는 2006년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행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방행정의 개편에 관해 연구했다. 그 연구의 핵심 주제는 “어떻게 하면 지방행정체계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주요 내용은 현재 지방행정의 자치체계가 “도-시,군” 혹은 “광역시-구”로 2단계인데 이를 1단계로 통합하여 인구 100명 이하 대략 70만 정도의 “광역화된 지자체”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최종 확정되지 못했고 2010년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최근에 다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논의도 17대 국회 특위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 안을 중심으로 오늘의 논의를 진행시키겠다.
17대 국회 특위안에 따르면 전국을 광역화된 지자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서울시도 영향을 받게 되는 바, 5개 혹은 8개의 독자적인 시로 분할하며(북서울시, 동서울시, 남서울시...) 도로교통, 상하수도 등의 종합적 조정권만을 갖는 상징적 서울시를 두되 별도의 선거 없이 국무총리가 시장을 겸한다는 내용이다.(열린우리당의 안을 중심으로.)
모든 행정 행위는 일정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서 이뤄진다. 지방 행정의 근간을 바꾸는 이번 개편도 그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 목표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개편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17대 국회 특위안이 추구한 목표는 이미 밝힌 것처럼 “좀 더 효율적인 행정체계를 만들자.”이다. 그런 목표에 따라 행정 단위를 기존 2개 계층에서 적정 규모의 인구 비율에 따라 하나의 계층으로 줄이자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정말 여의도다운 “목표”이고 여의도다운 “과정”이고 여의도다운 “안”이다. 다른 것은 논의를 좀 뒤로 미루더라도 논의 과정에서 여의도가 보여준 독선은 지방자치에 대한 그들의 안이한 인식을 드러낸다. 뉴욕시는 인구 820만 명에 뉴욕시 정부라는 하나의 지자체만이 존재한다. 분할을 하려면 서울보다는 뉴욕을 분할하자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그렇지만 연방 의회나 뉴욕주 의회에서 뉴욕시의 분할안을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상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뉴욕시가 중심이 되어서 논의할 사안이며 최종 단계에서는 당연히 뉴욕 주민의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참고로 뉴욕시는 커뮤니티 보드라는 제도를 시 헌장에 삽입할 때에도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여의도에서 이런저런 필요로 행정개편을 논의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지방행정의 계층과 범위에 대해서도 안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논의의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 되어야 한다. 여의도 탁자 위에서 국회의원들이 그어 놓은 금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터의 행정이 순식간에 변한다면 그게 과연 지방자치인가? 그 과정 어디에 자치가 있는가? 17개 국회가 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울시의원, 도봉구의원 한명이라도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는가?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지방자치에 관한 한, 국회의원들 정말 한심하다.
“박정희대통령 시절 처음 그린벨트 제도를 시행할 때, 주민의 의견도 듣지 않고 동네의 동선도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 산의 형태도 무시한 채 공무원들이 책상위에 앉아 선을 그어 책정하면서 참 많은 문제가 생겼지요.” 필자가 3대 도봉구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도시건설부서의 국장이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하지만 중앙에 앉아 선 긋는 버릇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게 국회의원들이 책상에 앉아 그은 선이다.
지방행정 개편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적 가치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방의 행정 개편이다. 중앙정부의 조직개편이 아니다. 당연히 지방행정개편의 핵심 목표는 “지방자치”와 “행정”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기초해서 설정되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지방행정개편의 핵심 목표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권력을 중앙으로부터 지역으로, 특히 주민에게로 돌려주는 것이 지방행정개편의 첫 번째 목표이다. 필자는 이 목표를 “Home Rule의(내 지역은 내가 다스린다는 뜻을 내포함) 달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Home Rule이란 주민들의 풀뿌리 에너지를 끌어내고 이 에너지로 지역의 공공적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으로서 풀뿌리 민주주의 혹은 지방자치의 본래적 가치를 뜻한다.
Home Rule의 달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범위가 너무 크면 주민의 풀뿌리 에너지를 끌어내기 힘들다. 따라서 주민이 감당할 권리와 의무를 행정 관료나 선출된 대리인들이 차지하게 되고, 그들이 행정과 정치의 주인이 되어 주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폐단이 생긴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행정 단위가 작은 것이 좋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경우 인구 5,000명~50,000명 수준의 Municipality(주민하고 가장 가까운 지자체를 통칭하는 용어)에서 주민참여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다.
참고로 17대 국회특위가 현재의 안을 만드는 데는 “지방자치단체의 적정규모 검토를 위한 실증적 연구(최영출)”라는 논문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짐작된다. 이 논문은 지방자치단체의 적정규모를 50만명-60만명으로 결론내리고 있는데 이 결론이 여러 글에서 인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그 논문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는 인구 규모, 즉 서비스의 최저소요비용이 들어가는 인구규모에 대해서 연구한” 논문은 있는데 왜 “주민이 공적 의사결정과 행정 과정에 참여하기에 가장 용이한 인구 규모와 행정 형태에 대해 연구한” 논문은 없는지 궁금하다. 여의도 정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대학에서 연구하는 행정학자들에게 주민참여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까?
둘째, 여의도 정가가 가장 앞줄에 내세우는 행정의 효율성이 그 두 번째 목표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높은 질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모든 행정의 궁극적 목표 중의 하나이다. 17대 국회 특위처럼 행정 효율성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또 그것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Home Rule의 달성과 효율성의 관계
흔히 민주성과 효율성으로 요약되는 이 두 가지 가치는 일부 경합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Home Rule의 달성을 위해서는 대체로 지방자치단체의 구역을(Boundary) 작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행정구역이 작을수록 지방자치단체는 점점 많아지게 되고, 이들 작고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큰 중앙정부를 연결하기 위해 그리고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을 조율조정하기 위해 중간계층의 행정단위가 필요하게 된다. 즉 행정의 계층이(Tiers) 많아지는 것이다. 그럴 경우 대체로 행정 비용이 증가한다. 따라서 Home Rule과 행정의 효율성을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며 이런 균형점에서 행정의 구역과(Boundary) 계층을(Tiers) 결정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이 두 가지 가치가 주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행정의 효율성이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양질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요약되는 바, 기본적으로 주민을 행정의 소비자로 간주한다. 여기서 행정의 공급자는 선출직 정치인, 특히 직업적 공무원들이다.
반면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의 중요한 공적 의사를 결정하며, 지역사회가 가진 자원을 적극 활용하여 행정을 수행한다.”라는 관점을 가진 Home Rule의 입장에서 보면 주민은 행정수요자인 동시에 공급자, 즉 행정의 주인이기도 하다. 바로 이점이 지역이 중앙보다 더욱 세심하게 민주주의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필자는 미국의 지방자치를 둘러보면서 이 두 가지 가치가 경합 측면뿐만 아니라 상호의존하는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을 빙 둘러 순환하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 과정에서 불암산과 수락산, 북한산국립공원의 일부인 사패산에 터널 공사가 시작되었고 지역단체, 환경단체, 불교계가 이에 반대하여 2년간 공사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하며 대통령이 되면 다시 한번 검토하겠다고 말하는 등 꽤 큰 이슈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2년 후 결국 공사가 다시 재개되었고 지금은 서울외곽순환도로가 완공되어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여러 연구 기관은 이 2년 동안의 공사 중지로 최소 5000억~최대 1조5천억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 할 때 어떤 비효율이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즉 풀뿌리민주주의가 왜곡되어 주민과 정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렇게 막대한 행정 비용이 지출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위의 경우 해당 자치구가 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부터 주민과 서울시를 제대로 연결시켰다면, 그래서 합리적 대안이 만들어졌다면 그렇게까지 막대한 행정비용을 소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결정의 민주성이 곧바로 행정의 효율성인 것이다.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수락산 터널 공사 모습이다. 필자도 이 터널 반대를 위해 한 3개월 농성을 했다. 가끔 완공된 도로를 운전할 때마다 기분이 참 묘하다. “거참, 편리하기는 하구나.” 하지만 도봉노원지역의 명산인 수락산, 불암산, 사패산을 꼬치 꿰듯 터널로 뚫고 지나간다는 기이한 발상에는 지금도 반대이다.
또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주민의 참여가 가장 왕성한 인구 5,000명~50,000명 수준의 Municipality에서 가장 다양한 행정 혁신이 시도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이런 작은 단위의 혁신사례를 바탕으로 연방정부의 행정혁신안을 기초하기도 했다.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행정혁신도 촉진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 로체스터시가 생생하게 그 사실을 증명한다. 주민의 에너지가 최고의 효율이다.
정말 제대로 지방행정혁신을 하려면 이렇게 Home Rule과 효율적 행정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관계를 잘 살펴서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는 최적화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요컨대 행정의 효율성에만 기댄 17대 국회특위의 안은 한쪽만 바라보는 외눈박이 안이며, 현실에서는 효율성도 제고할 수 없는 안이라는 것이다.
핵심 컨셉
17대 국회 특위에 어떤 분들이 참여했는지 필자는 모른다. 아마도 국회의원과 고위공무원과 교수님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분들은 대부분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나 집에 돌아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역을 모른다. 동네는 그저 잠자는 곳이다. 아마 편하게 불러내서 소주 한 잔할 동네 친구도 별로 없을 것이고, 비가 오면 걷기 좋은 동네 오솔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요즘 지역 이슈가 뭔지 관심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효율을 기준으로 행정개편안을 만든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행정개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주민의 생활권(Boundary of Life)에 따른 개편”을 주장한다. 원래 행정의 범위란 것이 그렇다. “내일의 지방자치” 세미나에 논찬자로 참석하였던 권오을 전 의원이 한 말이다. “현재의 한국 행정구역은 그 뼈대를 사실 조선시대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바꿔줄 때가 되기는 했지요. 그 당시는 사람이 아침에 걸어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 한 100리를 기준으로 군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맞다. 행정의 범위란 것은 “아침에 걸어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 즉 사람들의 생활권과 밀접히 관련되어 정해지는 것이다.
보통의 서울사람들은 어떤 생활권을 가지고 있을까? 다음의 두 가지이다.
서울시 광역 생활권
필자는 창동에 산다. 필자가 출근을 하는 KYC(한국청년연합회)와 초록정치연대는 각각 동대입구역과 서대문 사거리에 사무실이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대학 친구들과 종로에서 번개를 한다. 주말에는 가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잠실 롯데월드에 가거나 지인들과 북한산에 오른다.
마음먹고 멀리 여행을 가지 않는 한 서울시민의 생활은 대개 서울시 안에서 이뤄지며 한강 이남과 이북의 문턱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을 동, 서, 남, 북, 중앙의 5개 시로 구분할 만한 생활권의 차이는 없다. 즉 서울시는 집-직장-여가생활을 포함한 비교적 단일한 광역 생활권이다.
딸 연우의 운동회 사진. 연우의 생활권은 집-학교-방과후-문방구-시장-아파트 놀이터로 구성된다. 따라서 연우의 입장에서는 행정도 그 생활권에 맞춰서 형성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똑같다. 서울시의 행정구역은 서울시민의 생활권에 기초해서 구성하면 된다. 바로 서울시 광역생활권과 동네 풀뿌리생활권이 그것이다.
동네 풀뿌리 생활권
우리집 첫째 연우는 창4동 자운초등학교를 다닌다. 둘째 연서는 방학2동 어린이집에 나가는데 좀 멀지만 이사 전부터 다니던 곳이라 그냥 나간다. 장은 창동역 앞 농협에서 보고 동네 친구들과도 창동역 근처의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일주일에 서너 번 집에서 5분 거리인 중랑천변을 뛰거나 창동체육센타에서 수영을 한다.
집-어린이집-초등학교-아이들의 친구 관계-산책-동네 친구와의 맥주 한잔-지역 COMMUNITY를 연결하는 풀뿌리 생활권은 보통 1-2개의 동 안에서 형성된다. 위에서 보듯 필자의 일상생활은 창4동과 그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이 두 가지 생활권으로 서울의 행정이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혁명!
필자가 생각하는 서울시의 행정개편안을 간단하게 표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
즉, 동네 풀뿌리 생활권에 맞춰서 주민이 행정과 정치의 주인이 될(Home Rule) 수 있도록 현재의 행정동 1-2개 정도를 묶어 하나의 자치정부로 만들자는 것이다. 대략 인구 3-4만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구는 중요하지 않다. 인구가 10만이 되어도 사람들의 풀뿌리생활권에 부합하면 상관없다. 행정동 1-2개라든가, 인구 3-4만이라든가 하는 것은 기준이 아니라 풀뿌리 생활권에 맞추다 보면 결과적으로 그런 정도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다.
대략 행정동 1-2개의 범위에서 선거로 동장과 동의원을 뽑아 자치정부를 구성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어떤 정부 유형을 가질지 해당 동에서 선택한다. 즉 1명의 동장과 6명 수준의 동의원을 뽑을지, 아니면 7명의 동의원만 뽑고 그중에 한명이 동장을 겸할지, 혹은 동의원들이 행정과 경영 능력이 있는 사무장을 채용할지 주민투표로 스스로 결정한다. 이렇게 동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동네를 어떻게 만들까?” 토론이 벌어지는 대단한 이벤트가 되어야 새로운 행정개편은 성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장을 선출하는 것보다 7명의 위원만 선출하는 것이 주민 참여에 좀 더 용이하지 않을까 싶다. 행정책임자를 뽑으면 보통 그 사람에게 권한이 많이 몰린다. 동 자치정부의 핵심 과제는 주민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이 참여할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것이 좋고 그러려면 동장을 뽑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만약 동장과 동의원을 뽑는 정부 형태라고 하면 동장은 유급으로 하되, 동의원은 자원봉사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지만 그것도 동에서 예산 상황과 업무의 양을 고려하여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이 동 자치정부는 동네의 어린이집, 유치원, 방과후학교, 지역도서관, 노인센타, 복지관, 동네 공원, 작은 단위의 도시계획과 같이 주민생활과 직접 연관이 있는 행정을 다룬다. 이런 과제들을 주민의 직접 참여로, 즉 공무원과 세금이라는 행정 자원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주민 자원봉사와 기부 등 지역사회의 자원을 폭 넓게 활용하여 수행한다. 행정의 범위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아이를 키우는 중년의 여성이나 정치, 행정,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는 20대 청년들이 딱 맞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정치와 행정에서 소외된 그들이 이 기회에 공공의 영역에 적극 참여한다면 참 좋겠다.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타로 바뀐지 이제 10년이 되어 간다. 주민자치센타란 것이 위상도 애매하고 권한도 작아서 대단히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네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자치역량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고 할까? 필자가 사는 창4동에는 주민자치위원들이 만드는 “창사골 이야기”라는 동네 소식지가 발간된다. 만약 동에 자치정부가 구성된다면 동네의 변화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현재 서울의 “구”는 사람들의 생활 범위와 별 상관없이 서울시의 팽창과 함께 인구수에 따라 나뉘어졌다. 그것도 도봉구 40만, 노원구 60만 등으로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기에는 지나치게 크다. 그 정도면 뉴저지의 카운티급인데 미국의 지방행정에서 카운티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은 주민참여가 아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주민참여는 인구 5,000명-50,000명 정도 되는 Municipality에서 주로 담당한다. 구는 주민이 참여하기에는 너무 크고, 행정의 효율성과 책임성, 형평성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작다.
서울시 자치정부는 분할하지 않고 유지한다.
서울시 자치정부는 도로나 상하수도 등 도시 기능 수행에 필요한 인프라 관리, 대기와 하천 등 거시적 환경 관리, 포괄적인 사회보장 정책 개발과 시행, 징세 등 기본 행정 등을 수행하면 된다. 특히 동 자치정부가 “Home Rule의 달성”이라는 가치를 주로 추구한다면 서울시 자치정부는 “행정의 효율성, 책임성, 형평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담보한다.
행정의 효율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필자는 서울을 5개의 시로 분할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에 쉽게 수긍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상징적 서울시를 별도로 두어 교통, 상하수도 등 서울시 전체와 관련된 행정을 조율해야 하고, 5개의 시마다 몇 개의 행정구를 또 둬야 할 것이고, 현재의 동별 주민자치센타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현 18대 의회에서 행정개편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 안) 시민의 생활권과 무관하게 행정적 고려로 서울을 분할하다 보니 오히려 상징적 서울시, 행정구, 주민자차센타로 여러 계층의 장치들이 더 필요해진 것이다. 이게 과연 효율적일까?
행정의 책임성은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에 따라 행정의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구 자치정부가 동 자치정부로 대체되면 자치정부의 크기는 줄어들고 수는 많아진다. 서울시가 작아지고 많아진 자치정부들과 함께 가려면 행정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각 동 자치정부는 그 성격상 서울시라는 전체적 그림을 염두에 두기 보다는 개별 동네의 구체적인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랑천 관리라는 행정을 예로 들면, 현재는 7개 정도의 구가 공동 관할하고 있는데 동 자치정부로 전환하게 되면 몇십 개의 동이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럴 경우 행정의 책임성이 문제가 되는 바, 시가 이 분야에서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형평성도 서울시의 매우 중요한 행정 목표가 되어야 한다. 뉴저지에는 “애버트 구역(Abbot District)”라는 교육구가 있는데 애버트라는 사람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붙여졌다. 미국의 교육은 Municipality의 교육위원회에서 기본적으로 책임진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교육과정을 짜고, 교과서를 검인정하고, 교사를 뽑고, 수업시수를 비롯한 학교 운영의 기본적인 틀을 다 결정하는 한국식에 비해 다양하고 개방적인 교육이 가능한 장점은 있지만 반면,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교육의 질에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Municipality의 주요 세입이 빈부에 민감한 재산세이기 때문이다.
“애버트 구역”인 플레인필드(Plainfield)의 한 학교. 뉴저지주는 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매년 2000여만 원을 지원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대를 이은 가난은 사회의 공동체성을 해치고, 역동성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버트란 사람이 뉴저지 법원에 “가난한 사람도 일정 수준의 공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승소하였다. 이에 따라 뉴저지주가 “가난한 도시지역” 혹은 “특별한 필요가 있는 지역”에 교육재정을 지원하게 되었고 이런 구역을 애버트 구역이라 부르는 것이다. 애버트 구역인 패터슨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학생 1인당 년 16,700불의 재원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대단한 지원이다.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 모든 학교가 재정난에 허덕이다 보니 “왜 우리 동네에서 걷어간 세금으로 그 동네 학생들만 도와주느냐?”며 비판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행정의 형평성”이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서울이 약 300여개의 동 자치정부로 나뉘면 주민의 역동을 바탕으로 다양한 행정 실험이 이뤄지겠지만 반면 좋은 행정서비스가 가능한 동네와 그렇지 못한 동네의 격차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뉴저지주가 애버트 구역을 통해 교육 격차를 해소하듯이 서울시도 다양한 차원에서 동 자치정부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행정의 효율성, 책임성, 형평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서울시장이 강력한 권한으로 시정을 이끄는 현재의 강시장-의회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럴 경우 시장이 좀 더 장기적 비전과 정치적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구 1,000만의 방대한 행정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그리고 과도한 시장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뉴욕시처럼 공익옹호관이나 감사원장 등 몇 개의 선출직 공직을 두는 것도 고려해보면 좋겠다.
로마시대 호민관을 연상케 하는 뉴욕시 공익옹호관은(The Public Advocate) 이름 그대로 시의 행정 서비스가 주민을 향하고 있는지를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감사하는 직책이다. 인구가 너무 많고 시 행정이 방대하기 때문에 행정이 권위적으로 되거나 시민의 요구에 잘 반응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서 만든 제도이다. 시장 유고시 시장직을 이어 받는 점, 시의회의 회의를 주관한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연방정부의 부통령을 연상케 한다. 감사원장(The Comptroller)에 대해서는 세 번째 기고글에서 이미 설명하였기 때문에 생략한다.
시장뿐만 아니라 이런 공직들도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면 시장이 임명하는 공무원들과는 달리 독립성을 가지고 시장을 견제할 힘을 갖게 되며 업무의 책임성도 더 높아진다.
브릿지(BRIDGE) 행정구
필자의 구상대로라면 “행정의 효율성, 책임성, 형평성”을 추구하는 서울시 정부와 “Home Rule의 달성”을 핵심 목표로 하는 300여개의 동 자치정부가 구성될 것인 바, 이 두 자치정부가 다루는 행정 내용과 추구하는 가치가 많이 달라 협력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수평적으로는 동 정부의 숫자가 너무 많아 이들 사이의 정보 공유와 공동 사업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서울시와 동을 “연결”하고, 각 동 자치정부를 “연결”하는 “브릿지(BRIDGE) 행정구”를 구상하였다.
가상 시나리오
서울 동북지역(예전 강북구, 노원구, 도봉구)의 45개 동 자치정부가 모여 협의를 시작한다. 협의의 내용은 이들 45개 동의 쓰레기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서이다. 즉, 현존하는 도봉1동의 음식물처리장, 번동의 재활용선별처리장, 상계6동의 쓰레기소각장의 처리 능력이 45개 동의 쓰레기를 소화할 수 있는 바, 이들 3개 시설이 45개 동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소각 쓰레기를 각각 처리하되 대신 나머지 42개 동이 이들 3개 동에 일정한 환경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각 동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의 양에 따라 환경지원금이 책정될 텐데 그 요율과 몇 가지 실무적 방침에 대해서 앞으로 수차례에 걸쳐 논의할 계획이다.
이 논의는 “서울동북구 브릿지”에서 주선하였다. 브릿지는 이미 작년에 해당 동의 동의원, 관련 공무원들과 함께 유럽을 방문하여 관련 사례를 연수하였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함께 합리적 요율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서울시는 서울의 쓰레기 관련 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각 동에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감량토록 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관련 시설을 추가로 건립하기보다 동 자치정부 간에 관련 시설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작년부터 8개 “행정구 브릿지”를 통해 이와 같은 자율적 협약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도봉1동에는 도봉음식물중간처리장이 있다. 그리고 현재 강북, 노원, 도봉의 3개구가 합의하여 음식물, 재활용, 소각 쓰레기를 공동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니 위의 이야기가 완전 “가상”은 아닌 것이다. 사진은 아이들이 음식물중간처리장을 견학하면서 음식물에서 나온 이물질을 보고 놀라는 모습.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행정구 브릿지이다. 그것은 선거로 구성되는 자치단체가 아니며 서울시와 300여개의 동 자치정부가 함께 구성한 행정 기구이다. 서울시 전체에 대략 7-8개 정도면 어떨까 싶다. 1차적으로 동 자치정부의 공동 사업과 자율적 조정을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2차적으로 서울시의 행정 비전과 과제를 동과 연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필자는 그 좋은 모델을 보았다. 뉴저지에는 NJLM이라는(New Jersey League of Municipalities. 뉴저지 Municipality 연맹) 것이 있다. 뉴저지의 566개 Municipality들과 13,000명의 고위 공무원들이 참여해서 만든 자발적인 기구로 20명 정도의 스탭이 일하고 있다. 약 3달 전 이 기구가 궁금해서 사이버 회원으로 등록했고 그쪽 소식을 받아 보고 있는데 이 단체가 참 대단하다. 566개 Municipality들을 연결하는 진정한 브릿지 기능을 하고 있었다.
NJLM(뉴저지 Municipality 연맹)에서 도착한 메일이다. “태양열 등 재생가능 에너지와 관련된 주의 새로운 구상과 인센티브, 재정 옵션에 대해서 교육하는 중요한 세미나”라며 참가를 독려하고 있다. 거의 매주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서울에도 서울시구청장협의회가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NJLM가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연구 기능이다. 개별 지자체가 혼자 수행하기 힘든 사안에 대해서 공동의 연구를 진행하여 결과를 공유하고 필요한 것은 주 정부에 제도화 요청을 하기도 한다. 2008년에는 “새로운 학교기금 구상”이라는 프로젝트와 “주거개선위원회” 프로젝트를 핵심적으로 진행하여 제도화하였고 그 과정에서 지자체들에게 그 세부 실행 방법에 대해 조언하고 법적 자문을 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런 연구를 위해 NJLM에는 십여 개의 관련 연구위원회들이 있고 특히 법무처가 있어서 연구를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또 거의 매주 선출직 정치인과 직업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등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방정부의 경기부양 기금에 프로젝트를 내서 보조금을 따는 방법, 주의 새로운 노인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 등등 내용도 정말 다양하다. 오늘도 위의 사진과 같이 다음 주에 개최되는 세미나에 대해서 홍보하는 메일을 받았다. 2004년에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NJLM 산하 교육재단을 별도로 설립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각 지자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협력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뉴저지주의 566개 지자체는 NJLM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내가 구상하는 “브릿지 행정구”는 한국의 “NJLM”이다. 300여개의 동 자치정부가 7-8개의 지역 브릿지에서 만나 함께 연구하고, 교육하고, 혁신 사례를 나누고, 협력 사업을 진행한다.
브릿지 행정구는 NJLM처럼 동 자치정부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짜는 역할도 하지만 서울시와 자치 동을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기능도 한다. 서울시의 정책과 행정이 각 동 정부에 잘 전달되도록 하고 더불어 각 동 정부의 요구가 서울시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브릿지 행정구는 선거로 구성되는 자치정부가 아니라 행정 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치 동을 지휘, 감독하는 기능은 없다. 자치 동의 활동을 지원하고 촉진하여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울시의 장기적인 행정 비전과 조화되도록 할 뿐이다.
브릿지가 수행하는 위의 두 가지 기능에 대해, 아예 조직을 그렇게 두 섹터로 짜는 것도 가능하다. 즉 NJLM처럼 각 동 자치정부가 공동으로 출자하여 운영하는 “수평적 브릿지” 섹터가 있고, 서울시의 행정청(Agency) 역할을 수행하는 “수직적 브릿지” 섹터가 있어서, 이 두 섹터가 전체 브릿지 행정구를 구성하는 조직 모델이 가능하다.
핵심은 동 주민자치!
필자가 제시한 안에 대해 여러 가지 토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에서의 주민자치이다. 인구 3-4만 정도의 작은 동네에서 전면적인 주민자치를 해보자, 그래서 주민이 가진 에너지를 본격적으로 끌어내자, 그 에너지로 로체스터 같은 거버넌스도 만들어 보자, 여의도와 청와대에 지나치게 편중된 권력을 빼앗아 동네로 가지고 오자는 것. 그게 Home Rule이고, 서울시 행정개편과 관련된 필자의 핵심 주장이다. Home Rule이 달성되면 행정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도 쉬워진다.
필자가 4번째 기고에서 밝힌 것처럼 두 번째 민주주의를 기획하고,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연대를 만들고, 여러 사회구성원들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해결망을 짜고, 사람과 제도의 변화를 동시에 끌어내는 시민 이니셔티브는 바로 이 “Home Rule”의 달성으로부터 시작한다.
관련 자료의 번역 자원봉사를 해 주신 희망제작소의 고리(통번역재능기부자) 이지영, 김동욱, 최원석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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