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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는 ‘선진국(先進國)’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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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07) | 추천 (0) |점수 (0) | 2009-11-28 14:49:52 신동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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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는 ‘선진국(先進國)’이 아닙니다.
신동진(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사무차장)
이명박 대통령은 11월14일 APEC회의 참석차 싱가포르에 가서 "내 목표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이며,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는 단단한 각오로 일하고 있다. 내 임기 중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종시’, ‘4대강’, ‘KBS 김인규 사장 임명’ 등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이 고작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이라고 하니, ‘선진국’이 참 멀게 느껴집니다. 문득 MB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MB의 ‘선진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과는 다른 ‘선진국’인 모양입니다. 11월25일 '제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에서 MB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를 낳으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나라에서 (육아를) 맡아서 해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프랑스가, 독일이, 다른 선진국이 어떻게 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문화적 환경과 여러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그대로 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적이고 동양적 사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한다"
“한국적”. 이거 왠지 박정희 시절 “‘한국적’ 민주주의” 생각 나지만, 그 점은 차치하겠습니다. 위 말에서 저는 MB가 기존 선진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기존의 선진국을 뛰어넘는 ‘선진(先進)’을 꿈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다른 ‘보육 선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그럴 때도 됐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해외순방을 다니면서 얻은 자신감 같은 것도 읽혀집니다. 비록 그 ‘보육 선진(?)’의 방향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제 서구기준으로만 가지 않겠다는 그 발상 자체는 높게 쳐주고 싶습니다. 저도 이제 대한민국이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2010년 G20 의장국, 24번째 원조 선진국 가입(유일하게 원조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신)만 봐도, 적어도 대한민국은 세계 2백여 나라 가운데 20위 정도는 하는 ‘선진(advanced)’국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의 유신시대 그리고 그 정치적 아들 전두환의 5공화국 당시 국정목표는 ‘선진 조국 창조’ 였습니다. 그 ‘선진’은 ‘서구 자본주의 선진국처럼 되자’로 이해됩니다. 세상을 ‘선진’과 ‘후진’으로 나눈 기준은 서구인의 관점, 자본주의적 관점에 따른 기준이었습니다. 즉 서구화가 덜 돼있거나, 자본주의화가 덜 돼있으면 후진국이고, 그것이 돼있으면 선진국이었습니다.
물론 인권, 복지, 정의, 배려, 노블레스 오블리쥬, 지속가능성과 같은 좋은 ‘선진(先進)’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가치가 충만(?)한 ‘선진국’들도 과거 인권유린과 환경파괴 등의 창피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된 것입니다. ‘선진국’의 산업혁명 시기, 제국주의 시기, 그들 국가 지배층의 인권유린과 환경파괴가 박정희 때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다리 걷어차기’ 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의원은 지난 5월6일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18세기 유럽문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은 ‘최초의 신생국’ 이란 말이 있습니다. 20세기 서구문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도 전후 신생국 중 하나입니다. 미국이 신생국으로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면, 한국도 전후 신생국 가운데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중략)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미국의 가치 위에 좌절하지 않는 용기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공동체를 위한 헌신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동시에 이뤄서,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주었습니다. (중략)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 인류가 행복한 지구촌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미국이 인류를 보다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략)“
이 연설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성과의 공을 박정희가 아닌 국민들에게 돌린다면, 저의 생각과 위 박근혜의 글은 차이가 없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현재 대선 후보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얘기합니다. 그 '유지'를 잇겠다고 합니다. 그가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고, 진정 복지를 증진시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와 박근혜 두 부녀로 인해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진국’ 되면 ‘대한민국’이 만족스러우십니까? 후세들에게 ‘목적을 위해 수단은 때로는 무시될 수 있다.’, ‘기회주의적 처신이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친일, 독재, 통일, 매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진이다.’ ‘국민은 우매하다. 그래서 지도자는 늘 고독한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을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추진해야한다.’ 등등 뭐 이런 가치관을 남겨주는 것이 흔쾌하십니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손잡고 선진화를 이루자.’ 많이 회자되는 말입니다. 소위 보수, 진보 모두 ‘선진’하자는 데는 저항이 없는 듯 합니다.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너, 선진 좋아, 안 좋아’ 질문하면, ‘안 좋아’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진’의 주술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술’은 박정희가 걸어놓은 것입니다. ‘박정희 신화’를 얘기하지만, 우리가 ‘선진’의 주술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엄청난 ‘선진’(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을 이룬 시대의 대통령 박정희를 우리는 부활시키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박정희를 부정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선진’을 죽여야 합니다. 박정희를 비난하는 것은 ‘선진’의 기준이 아니라 ‘정의’의 기준일 때에만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이 결과지상주의 국가, 기회주의가 판치는 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선진’을 죽여야 합니다. 인류사에 ‘선진’이란 말 속에는 약자와 의인의 피가 묻어있습니다. 탐욕과 편견, 부정의와 폭력의 그림자가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한국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실험에 돌입한 것이다. 한국은 서구 민주국가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시민에 의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바탕으로 민주화 이후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틀을 만들어야 할 기로에 선 것이다. 앞으로 한국 역사는 세계정치사에서 민주화 이후 안정적 국정운영의 방법을 찾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공화주의적 국정운영」9쪽, 임채원, 2008, 한울)
임채원 박사는 정치 영역에 주목했지만, 저는 이 관점을 확대해도 된다고 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세계최초라고 전 생각합니다. 즉 대한민국은 후진국, 신흥공업국을 지나 선진국이 되었기에 대한민국이 가는 길은 지구상 어느 나라도 가보지 않은 최초의 길입니다. 처음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은, 올바른 가치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식의 발언, 생각. 지구상의 180여 나라들이 보면 그런 넌센스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순환논법이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왜?” “복지가 부족하니까.” “왜 복지가 부족한가?” “아직 선진국이 아니니까.”
그래도 우리의 인권, 문화 의식 수준 등이 아직 ‘선진국’은 아니지 않느냐고 다시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선진국’도 반인권, 반민주 역사가 있었고, 지금도 은밀한, 그리고 그 나라에 가서 지내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인종우월주의가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서 좀 부족하거나 부끄러운 점이 있을 수는 있어도, ‘선진국’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0살짜리 대학생에게서 볼 수 있는 경험, 품성을 10살짜리 천재 대학생에게서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설령 EQ가 좀 떨어지고, 치기가 보인다 해도 10살짜리 대학생도 대학생인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선진국’들도 파렴치한 짓들을 여전히 하고 있고 또는 묵인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취재차 버마에 가보니,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지 연금을 비난하면서도, 그 나라에서 천연가스 개발하면서 독재자에게 돈을 듬뿍 갖다 주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의 석유회사였습니다. 또 하나,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굶어죽는 것은, 곡식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생산된 곡식들이 유럽과 미국의 동물 사료로 수출됐기 때문이라는 사실. ‘선진국’ 육류 소비를 위해, ‘후진국’의 인간이 굶어죽는 이런 대량학살을 소위 ‘선진국’이 ‘후진국’의 집권층과 결탁해서 아직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 ‘후진국’ 집권층은 또 ‘선진’을 목청껏 외치며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모델국가로 삼으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때가 됐습니다.
앞에서 보았듯, MB는 새로운 ‘선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선진’의 방향이 마음에 안 든다면, 마치 한일병탄 전 ‘일진(一進)회’가 한마음으로(一) 나아가서(進) 나라를 팔아먹었듯, 대한민국이 열심히 앞장서서(先進) 세계에 불량국가모델을 수출하거나 또는 나쁜 친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세계사에 유래 없는 최초의 국가비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깃발에서 ‘선진’은 빼버려야 합니다. 근대 이성의 발견 시부터 시작된 서구 중심의 ‘선진’ 개념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봅니다. 그 개념은 지구를 고갈시킨 주술이 걸린 단어입니다. 남극의 빙하가 뚝뚝 잘라져 바다로 떠내려 오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1년 내릴 비가 단 하루에 내려버리는 지금, 나 이외의 것들을 타자(他者)화해 이용, 수단, 정복 의 대상으로 삼고, 무한 자원, 확장되는 세계의 개념에 기초한, 돌아보면 단순무식하고 단선적 세계관에 기반한 ‘선진’이라는 개념은 죽어 마땅합니다.
우리에게는 ‘홍익인간’이 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양심과 정의’의 울림이 있습니다. 너 죽이고 나 살겠다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을 향한 세계 최초의 민중항쟁이었습니다. 제헌헌법에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용해시킨 지혜가 있습니다. 친일파가 주도한 제헌이었지만, 친일파를 단죄하는 법조문을 담아낸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강제해 낸 것이 바로 대한국민이었습니다. 자신은 못 먹으면서도, 우골탑을 세우면서도 자식들을 교육시킨 악발이 국민이 없었다면 근대화 일꾼도, 민주투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박정희가 새마을 운동을 하기 전, 스스로 새마을을 먼저 만들었던 국민이 대한국민입니다. 국가가 돈 대줘서, 지도자가 시켜서 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은 몰라도, 가족을 책임지고, 내게 주어진 임무는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선량한 마음이 없었다면, 베트남전 참전, 파독 근무, 중동 진출을 통한 외화벌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배운 것은 실천에 옮기려 애쓰고, 나쁜 짓은 하지 않으려 애쓴 근면, 성실의 대한국민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사에 유래 없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남들과는 다른 건강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대한국민의 눈높이를, 지구를 말아먹은 ‘선진국’ 수준에 맞춘다? 그것이 성에 차십니까? 저는 성에 안찹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언어로 세계를 옳은 길로 이끄는 국가 비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하신 ‘아름다운 나라’도 좋습니다.
제가 제안을 한다면 ‘선도국가’ 입니다. ‘先導' 도 좋고 ’善導‘도 좋습니다. 영어로는 guide, lead 다 좋습니다. 대한민국이 앞장서되, 세상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국가‘ 였으면 좋겠습니다. 옳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비전이 ’선도국가‘가 된다면, 우리는 세계사 속의 반인권과 환경파괴를, 그리고 우리 역사 속의 친일과 독재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지양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갖습니다. 후손들에게 ’정의‘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미 ’선도국‘이라는 말이 이러저러한 좋은 용도로 많이 통용되고 있으니, 그 말이 외소하지 않아서 또한 좋습니다.
올바름, 정의로운 사회는 과거에 이상 또는 말 뿐인 구호였을지 모르나, 불공평의 심화, 자원 고갈, 온난화, 정보화, 세계화된 지금, ‘정의’는 가장 실용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도국가‘의 핵심은 ’지속가능성‘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인간과 자연, 중앙과 지방은 공존해야하고, 사회는 공정 공평해야 합니다. 지속가능이 소수특권층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어야 지속가능 합니다. 한 국가, 한 지역에 국한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하지 않고, 최대 다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밑그림은 사회디자인연구소의 많은 글들 그리고 많은 연구자분들의 글에서 이미 많이 논의됐다고 봅니다.
희망의 미래, 다른 대안적인 세상, 정의로운 역사를 고민하는 분들은 이제 ‘선진국’이 아닌 ‘선도국’을 얘기했으면 합니다. ‘선도국가론’으로 대한국민의 저력을 담아내면서, 세계를 구할 비전을 만들어 냈으면 합니다. 세계 곳곳의 대안적인 철학에 기반한 건강한 이론과 실천들을 녹여낸 감동적인 세상을 대한민국이 실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 선진'을 넘어서는 ‘세계 선도'를 꿈 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전 세계의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주도로 함께 모여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아시아 빛나는 황금시대에 빛나는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언어가 진리의 심연으로부터 솟아나는 곳
지칠 줄 모르는 열망에 완성을 향하여 줄달음치는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 타고르, <동방의 등불> 192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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