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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와 상생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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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21) | 추천 (0) |점수 (0) | 2009-06-14 15:28:30 doo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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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소득-부채.gif, 미국 GDP와 중간소득.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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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에 관하여 오늘(09년 14일 오전 0시) 백분 토론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토론이었다. 실로 몇 년 만에 100분 토론을 보았다. 그 전에도 거의 본 적이 없지만 , 아무튼 오랜 만에 보게 되었다. 1. 이익의 상충과 합치관계 기업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싶어 한다. 노동자를 적은 임금을 주고 맘껏 부려 먹고 모든 진을 다 빨아 먹을 때가지 착취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반면에 노동자는 기업을 착취하고 싶어 한다. 임금은 최대한 많이 받고 , 대신에 일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양만큼만 지출하려 한다. 그러므로 기업과 노동자는 서로 이익 상충의 관계에 놓이는 일면이 있다. 반면에 기업과 노동자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측면도 있다. 기업의 제품이 질이 좋든지 수요에 부응하는 특질을 갖거나 시기적절한 운이 있다면 기업과 노동자는 둘 다 이득을 보게 된다. 갈등과 협력은 모든 생물들의 관계를 특징짓는다. 인간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착취는 일방이 타방보다 힘이 더 우세한 경우에 발생한다. 일단 착취관계가 성립되면 피착취자는 더 약해지고 착취자는 더 강해진다. 정의 되먹임(포지피브 피드백)이 발생하게 된다. 피착취자는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힘이 , 착취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 약해진다. 반면에 착취자는 착취를 하면 할수록 더 착취력이 강해진다. 보통의 경우에는 기업이 노동자보다 더 힘의 우위에 있다. 그 힘의 차이는 각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우세한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 다시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자들이 늘어나게 되면 , 자기를 방어할 수 있지만 , 남을 착취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중간계층?)의 자기 방어력도 급격히 약해진다. 순망치한의 원리이다. 생존임금에 노동을 파는 자들이 넘쳐나게 되면 , 바로 그 위의 계층은 더 이상 기존의 임금을 부르지 못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임금을 낮추고 , 자신의 권리(정규직)이라고 생각했던 권리도 내놓아야 한다. 다른 한편, 저임금 기업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면 ,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주는 기업들은 임금의 면에서 비교열위에 처하게 된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이 착취를 좋아하고 이기적이며 기회주의적이기 때문에 , 그런 고임금이 더 이상 지속적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똑같은 논리가 착취자 이외의 모든 계층에 파급된다. 그 결과 사회는 양극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 착취자와 피착취자는 둘 다 피폐하게 된다. 피착취자는 자신의 기술을 염마하고 , 지식을 쌓을 시간도 돈도 여유도 없게 되어 , 지적, 기술적 , 예술적 면에서 영원한 어린애로 남게 된다. 더구나 기업들이 저임금 산업으로 그 생태계가 변모함에 따라, 자본재와 고부가가치 기술들을 배우고 연마할 기회의 창이 점점 더 닫히게 된다. 착취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지적 정신적 발달 -전인(whole-man)의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 저임금 산업이 그의 본업이 되는 한 , 그에게는 기술혁신의 인센티브도 , 자본재를 사용한 규모의 경제에의 유인도 사라지게 된다. 그에 따라 그의 경영은 순전히 저임금을 착취하는 오직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에게 닥친 문제는 더 이상 혁신과 자본재의 복잡하고 , 정교하며 , 난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인재들을 양성하며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고도의 능력을 요하는 그런 문제들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능력은 그의 일의 종류와 질에 의해 규정된다는 면에서 , 착취자도 지적, 정신적으로 황폐화하게 된다. 도덕적으로는 피폐하게 됨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2. 미국의 금융위기와 비정규직 문제 아래의 도표들에서 보듯이 1900년대 이래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부유한 나라이던 미국의 일반 노동자들은 , 일단 그들의 힘이 약화되자 , 더 이상 자신들이 그 전에 누리던 봉급과 혜택들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 http://blog.naver.com/saranmul/20030502043 ) 미국인들의 봉급이 얇아지면서 , 그들은 일단 저축을 줄이고 , 그것도 안 되자 빚에 의존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 그들의 저축율은 0로 떨어지고 빚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게 되었다. 신용팽창에 의해 지속적으로 오르던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서 , 그들의 폰지 게임도 이제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미국은 자율규제라는 미명 하에 늑대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링컨이 유명하게 말했듯이 “늑대의 자유는 양에게는 구속이고 , 양의 자유는 늑대에게는 구속”이었다. 늑대가 마음껏 양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자 ,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게 된 양들로 인해 결국 늑대도 해흫 입게 되었다.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의 장은 결국 둘 다 공멸하는 파국으로 끝나게 되었다.
3. 사회와 사회 간의 생존경쟁과 협력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투쟁은 잘 알려져 있다. 세계 제국을 자랑하고 문물과 부가 넘쳐나는 페르시아 제국과 그들의 식민지와 다름없던 그리스와의 대결은 페르시아의 일방적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저변에 깔린 근본적인 원인은 페르시아가 양극화된 계층 사회였던 것 같다. 노예로 구성된 페르시아군은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여 얻는 것이 없었다. 반면에 자유인으로 구성된 그리스 군은 전쟁에서 지게 되면 잃을 게 너무나 많았다. 처자식과 재산과 자유 심지어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저임금 산업에 의존하는 사회는 고임금 산업에 의존하는 사회와의 투쟁에서 열세에 처하게 된다. 고임금 산업은 그 고임금에 해당하는 노력을 노동자에게서 끌어내어만 하는 막중한 과업이 기업에게 주어질 뿐만 아니라 , 기계와 경영의 끊임없는 혁신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노동을 착취하지 못하면 자연과 기술, 지식 그리고 조직을 착취해야 살아남는다. 일단 기술혁신과 자본재에 의존하게 되면 , 그러한 지식과 기술이 노동자와 사회에 널리 퍼져 있게 되어 , 다음번의 기술혁신과 조직 혁신 그리고 사회적 신뢰 증진에 필요한 기초가 이미 되어 있는 상태가 되어 , 기하급수적인 혁신이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러한 결과 저임금 산업에 기반한 사회는 고임금 산업에 기반한 사회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고, 그 격차는 시간이 감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게 될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다. 미국 사회가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에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점점 더 밀리게 된 사실은 상당부분 여기에 기인할 것이다. 4. 영합게임과 비영합게임 인간들은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이타적이기도 하다. 강한 상호성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조건적 협력자”인 동시에 “이타적 처벌자”이기도 하다.(“ moral sentiments and material interests” , H.Gintis et al ed. http://www.amazon.com/Moral-Sentiments-Material-Interests-Foundations/dp/0262572370/ref=sr_1_1?ie=UTF8&s=books&qid=1244957819&sr=1-1 )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 못 되는 이유는 , 이기적인 인간들의 집단은 영합게임을 하게 됨으로서 , 강한 상호성을 기반으로 하여 협력적 비영합게임을 하는 사회에 의하여 패퇴하게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뢰에 바탕을 두고 협력하는 사회는 비영합게임으로 서로가 상생(win-win)하게 되는 반면 , 상호적대적인 경쟁에 기반한 사회는 영합게임으로 win-lose하게 된다. 이러한 집단들 간의 경쟁(투쟁?)에서는 비영합게임을 한 사회가 이기게 될 게연성이 높아지게 된다. (“non zero: the logic of human destiny, ”,R.Wright , http://www.amazon.com/Nonzero-Logic-Destiny-Robert-Wright/dp/0679758941/ref=sr_1_1?ie=UTF8&s=books&qid=1244959362&sr=1-1 5.비정규직, 한계기업 그리고 비영합게임 비정규직이 많아지게 되면 , 노동자들을 착취할 기능성이 높아지고 , 이 가능성의 공간을 찾아서 한계기업들이 몰려오게 된다. 한계(marginal )기업은 말 그대로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지 못하면 바로 망하게 될 처지에 놓인 기업을 말한다. 한계 기업들은 노동자를 착취하여 그 노동자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여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질 기회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다. 한계기업들은 기술 개량과 경영개선 그리고 기술혁신에 대한 유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오직 저임 노동을 착취해야만 살 수 있다. 한계기업들 간의 경쟁은 임금 깍기 경쟁으로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길항력이 없는 한 , “최소 저항의 경로”를 따라서 한계기업들은 움직일 것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주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계기업들에게 혁신과 경영개선의 짐을 지우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자 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노조나 다른 길항력이 약한 한 국가가 이를 대신하여 , 한계기업들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워서 혁신과 경영개선에 힘을 쏟게 해야만 할 것이다. 혁신하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시장의 본연의 기능이다. 시장이 이를 못할 때는 국가가 나서서 이를 대신하여야 한다. 기술과 경영을 노동자들이 배우고 익힐 기회가 많아지면 , 기술혁신과 경영개선이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착상하여 창업을 하여 새 기업들을 만들 개연성도 동시에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저임금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새 경쟁자에 의하여 퇴출당하면서 시장은 본연의 제 기능을 다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6. 결론 비정규직을 늘려야 되는가 줄여야 되는가 하는 문제는 영합게임(zero-sum game)의 논리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다. 노동자들에게는 기업에 협력할 유인을 주고, 동시에 기업에 의해 착취되지 않을 자유를 주면 , 기업은 협력에서 오는 이득을 취함과 동시에 그 비용부담으로 인하여 혁신과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임계점 또는 균형점이 어디인지는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점진적으로 기업들에게 혁신과 개선의 부담을 더 한층 가함과 동시에 , 노동자들에게 새 기술과 지식 그리고 정보를 취득시켜서 , 새 혁신과 개선의 가능성을 높이고 그들이 새롭게 창업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서 , 더 많은 기업들이 더 많이 경쟁하게 하는 것만이 서로가 상생하고 다른 사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첩경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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