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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키아벨리적 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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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03) | 추천 (0) |점수 (0) | 2009-06-12 08:53:54 신동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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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 사후 한국사회 일각에선 애도와 추모, 자책감을 넘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비주류의 전형, 바보 노무현. 그도 결국 ‘기득권 복합체’의 강고한 장벽에 막혀 좌절 추락한 것 아니었나. 그저 수사를 받다 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한 것일 뿐이라는 사람도 있으나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제 과녁은 반독재 민주화에서 반기득권주의로 옮겨져야 할 때라고 본다. 지금이 정치 사회 변혁의 중대 계기인 것이다. <경향신문 - 김철웅 칼럼 ‘쉬또 젤라찌? <무엇을 할 것인가>’ 2009.6.9>
지금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는 이름은 더 이상 민주도 경제성장도 통일도 결과적 고비용만 치루는 능률도 아니다. 그것은 통합, 융합, 소통, 신뢰라는 도덕적 리더십이다. 통합과 신뢰가 없으면 더 이상 대한미국을 끌고 갈 수 없다. 우리나라 각 분야 각 기능은 모두 세계적 경쟁을 할 만큼, 해야 할 만큼 역량이 커졌다. 이제는 각 기능, 각 분야간 통합, 화합, 조정, 소통, 신뢰가 국가 운영의 최대 명제이고 그것만이 국력을 키우는 길이다. 다른 말로는 이념논쟁, 역사논쟁, 지역갈등, 소득갈등, 노사갈등, 세대갈등이라는 전통적 현대적 미래적 갈등의 극복 없이는 한 발 자국도 전진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현주소이고 미래도전이다. <매일경제 - 김진현 칼럼 ‘대한민국의 리더쉽은 왜 꼭 도덕적이어야하나' 2009.5.24>
이 대통령은 지금 적극 국면전환에 나서야 한다. 친북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파에 손을 내밀고 정계개편에 준하는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당내 반대파를 삼고초려 하는 감동의 정치를 펴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이는 이벤트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고 그때부터 레임덕 대통령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사실상의 임기는 지금부터 1년 남은 셈이다. <조선 - 김대중 칼럼 ‘국면을 전환해야’ 2009.6.7>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편가르기’와 그에 따른 ‘승자독식주의’는 한국 정치가 필요 이상으로 살벌한 이전투구로 전락하는 주요 이유가 아닌가. 현 정권 사람들이 복수욕과 탐욕의 수렁에서 탈출해 진정으로 국민 화합을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 고뇌하길 바란다. <한겨레 - 강준만 칼럼 ‘복수욕과 탐욕을 넘어서’ 2009.5.31>
모두 노무현 서거 이후 나온 칼럼들입니다. 칼럼을 쓴 사람들과 게재한 신문사만 놓고 본다면, 진보-보수 한 판이 붙을 것 같은 면면들이지만, 인용한 글들을 붙여놓으면 한 사람이 썼다고 얘기해도 될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핵심은 바꾸자는 것입니다. 지금이 반드시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꿔야할까요?
‘승자독식’, ‘기득권’이 공고하게 구축돼있는 상황에서 ‘자유’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자유’가 제국주의를 낳고, 사회와 세계를 양극화시키는 것은 ‘자유’의 피할 수 없는 본질 때문입니다.
‘이념, 역사. 지역, 소득, 노사,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 또한 문제해결의 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시즘이, 공산독재가 ‘민주’의 외피를 쓰고 등장했던 것도 역시 피할 수 없는 ‘민주’의 본질 때문입니다.
‘자유’와 ‘민주’는 태생부터 갈등관계로 태어났습니다. 때문에 그 둘의 동거 ‘자유민주주의’는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냉전 시기 ‘사회주의’가 현존 국가로 있었을 때, 자본주의 국가들은, 즉 ‘자유주의’ 국가들은 ‘민주’를 차용해 ‘자유민주주의’라는 옷을 입었으나, 냉전에서 승리해 사회주의 국가가 없어진 이후 ‘자유’는 더 이상 부자유스러운 ‘민주’의 외피를 두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유’ 전성시대 바로 ‘신자유주의’시대입니다.
그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서 전 세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다가 결국 ‘자유’의 폐해로 인해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던 미국에서, ‘민주’당 비주류후보 그것도 흑인인 오바마가 ‘공화국의 정신’을 얘기하며, ‘국민통합’을 얘기하며 당선한 것은, 단순히 미국 양당구도에서의 정권교체의 의미를 넘어 세계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유’의 폐해를 극복하고자하는 시도가 이제 ‘민주’가 아닌, ‘공화’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진보’라는 역사적 교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화주의’가 필요했던 순간들은 역사상에도 있어왔습니다. 시민혁명으로 ‘왕’이라는 권력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던 순간. 그 순간 그들이 찾은 답이 바로 ‘공화주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5년 단임제 정부들이 과반수 이하 유권자의 지지로 당선되어 국민통합을 이루면서 계층 간 이해 갈등을 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우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고민(「공화주의적 국정운영」임채원, 한울, 2008) ”을 하고 있습니다.
독재나 제왕적 리더십이 아닌 새로운 리더십과 국정운영의 질서가 필요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찾을 답은 진리가 아니라,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민주’가 아니라 ‘공화’입니다. 왜 공화인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논술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마키아벨리적 순간 -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고 국정운영의 안정성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공화주의적 대안이 모색되는 역사적 순간 - 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바보 노무현’은 그 ‘마키아벨리적 순간’에 기존 자유(보수), 민주(진보)세력에게 크게 작게 상처받고, 구시대의 막내로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이 땅에 진정한 ‘마키아벨리적 순간’의 깨우침을 던지고 간 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이미 시민들은 벌써부터 ‘공화’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효순,미선 촛불시위, 월드컵 응원, 노무현의 당선, 탄핵반대 촛불시위, 태안자원봉사, 광우병 소 반대 촛불시위 등 기존의 정당구조로서, 진보-보수로서 포괄되지 않는 모습들을 이미 자유와 민주의 세례를 받은 시민들은 몸소 ‘공화’의 실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지속시키고, 제도화할 책임은 물론 정치권의 몫이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공화’의 시민들은, 자신의 공화적 선택의 순간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조용히 흰 국화꽃을 들고 햇볕이 내려쬐도, 비가 쏟아져도, 긴 줄을 마다않고 시민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이제 정치권에서는 그 흐름을 ‘개헌’이라는 그릇에 담으려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권이, 이미 구세력이고 ‘기득권’인 정치권이 시민들의 순수한 공화정신을 잘 담아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yes라고 생각하시면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그런데 no라고 생각하신다면?
이제 공화주의 정당을 만드는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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