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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 선언 비평 1 -발이 현실에서 붕 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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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09) | 추천 (1) |점수 (5) | 2009-06-10 09:36:08 김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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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 선언 비평 1
-문제의식이 현실과 크게 괴리되어 있다-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 글은 2009년 6월 8일 뉴민주당 선언을 놓고 사회디자인연구소에서 한 내부 토론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이 토론 결과는 앞으로 한 두 번은 더 정리, 발표할 예정이다. 뉴민주당 선언은 시대와 한국 현실을 통찰하고, 과거를 반성하여 뭔가 대담한(?) 전환을 시도하여, 민주당의 갈 길을 놓고 갑론을박 하는 상황을 촉발시킨 것 하나만으로도 높이 평가 받을만 하다. 세부 내용에 있어서도 눈 여겨 볼만 한 참신한 것들이 적지 않다.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성장을 진보개혁 세력의 간판 상품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것, 전두환과 민주정의당이 오염시켜놓은 정의를 진보개혁의 간판 상품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것, ‘기회의 복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기회를 특별히 강조하였다는 것, 대한민국 역사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공한 역사로 긍정하였다 것, 환경.에너지 문제와 당의 조직.운영의 현대화를 주요하게 거론하였다는 것, ‘정치의 실패’를 강조하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것 등이다. 앞으로 이 글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하겠지만, 이 비판 역시 시대, 현실, 철학, 가치, 주요 정책 등을 나름대로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종합하려 한 뉴민주당 선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뉴민주당 선언은 허접한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 진보지식사회와 민주당의 수준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기에 적지 않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래도 진보개혁 진영에 이만 한 것이 없다고 본다.
단어 사용 빈도를 통해서 본 뉴민주당 선언 뉴민주당 선언의 문제의식의 우선순위를 대충이나마 알기 위해 단어의 사용빈도를 살펴보자. 워드프로세스 단어 찾기/바꾸기 기능을 이용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성장’과 ‘기회’다. 각각 64번, 59번 사용되었다. 그 다음이 복지(34번), 공동체(26번), 교육(23번), 일자리(22번), 정의(21번) 양극화(16번), 지식(14번), 평화(14번), 환경(11번) (시장)만능(6번), 공정(5번), 오작교(5번), 중도(4번), 구제(4번) 기후변화(4번), 에너지(4번), 중소기업(4번), 금융(4번)이다. 그러면 민주당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지지층이자, 한국의 미래이자, 기득권 위주의 게임규칙의 최대 피해자인 청년과 관련된 언급은 몇 번이나 될까? 딱 1번이다. 청년 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IMF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여성, 청년, 노인 일자리 등 일자리가 태부족이다” 는 말로 지나가면서 툭 건드리고 있다. 여성과 노인도 위 문장에서 딱 1번 언급되었다. 자영업과 비정규직도 딱 1번 언급되었다. “자영업 종사자는 취업자 4명중 1명이고 비정규직은 800만 명이 넘고 있다” ‘출산’이라는 단어도 딱 1번이다. “국가는 세금과 재정지출을 통해서……육아출산, 장애인, 노후 등 기초적인 복지를 확대한다” 전혀 언급하지 않은 단어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이 최소 한번쯤은 언급할 만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언급하지 않은 단어가 여럿 있다. 단적으로 헌법/개헌(헌재, 법원, 검찰 등 사법개혁 포함), 선거법, 지방자치(행정) 개혁-시군구 통폐합 등-, 국방 등이 그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의아스러운 일이다. 특히 1987년 헌법, 1988년 선거법의 모순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벤처, 창업, 식량(곡물)이라는 단어도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진취적 기풍과 활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언급할 만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한편 참여정부에서 강조되었던 금융허브, 물류허브 정책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허브라는 단어 자체가 실종되었다. 동아시아 의료허브, 교육허브 같은 단어는 한때 변죽을 올리던 금융/물류허브 전략이 빛을 못 보는 바람에 쓰기가 멋쩍을 수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처럼 의료와 교육을 통해서 외화벌이를 하겠다는 장밋빛 비전은 표방할 만하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에서는 의료는 보편적 복지의 대상으로 언급할 뿐이다. 참여정부에서 추진하던 ‘의료산업선진화’전략(2006.7.11)의 핵심 컨셉도-이는 유럽 보건의료 캐치업(Catch up)을 선진화로 생각하던, 꽤 좌파적인 사람들이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의료민영화 시비를 겁낸 모양이다. 어쨌든 성장과 일자리를 엄청나게 강조한 것 치고는 일자리창출 및 산업육성 전략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 점을 보면 우클릭(중도화) 한 것이 아니라 좌클릭 한 것이다. 아니 더 후퇴한 것이다. 한 발은 더 오른쪽으로 한발은 더 왼쪽으로 옮겼으니 가랑이 찢어질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모순된 행보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해 주는 철학과 중심가치(예컨대 정의나 공평)가 튼실하면 괜찮지만, 뉴민주당 선언은 그냥 개념없이 좌충우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음 글에서 밝힐 것이다) 피아(彼我)를 가르는 정책(공약)? 그러면 뜨거운 반대자와 뜨거운 지지자를 가르는 ‘갈등 사안’에 대한 입장은 어떨까? 특히 민주당이 생각하는 핵심 지지층(서민.중산층, 중소기업 등)을 배려한 정책 말이다. 민주당의 중소기업 친화성은 서민.중산층 친화성만큼이나 중시해 온 가치이다. 뉴민주당 선언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이라는 단어는 4번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정책과 관련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낡은 성장 모델이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라면 포용적 성장은 무형의 지식, 기술, 아이디어의 보고인 중소기업을 중시한다” “중소기업 혁신환경 구축을 통한 경쟁력을 강화한다” 사실 중소기업가 및 중소기업 근로자들로 하여금 약간의 기대라도 갖게 할 만한 구체적인 중소기업 보호, 지원책은 적지 않다. 불공정하도급 엄단, 중소기업부 신설, 정부나 공기업의 조달(공공 구매) 시장에서 중소기업 배려, 벤처기업 창업 지원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선언은 늘상 해 오던 얘기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나마 벤처라는 단어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17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 <일류국가 희망공동체 대한민국>(북마크, 2007)에는 “벤처 및 중소기업 육성”(p 43~45)이라는 제목 하에 꽤 구체적인 비전과 공약이 언급되어 있다. “현재 OECD 29개국 중 28위인 창업단계, 소요기간, 비용을 OECD 최상위 수준으로 개선……아이디어상업화 센터 설립, 1원 미니기업, 1인 법인 활성화 등을 통해 혁신형 중소기업의 설립을 활성화.......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민영화하여 마련되는 재원으로 중소기업을 지원……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상호저축은행 등 중소금융기관의 기능을 강화……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제품 판로 개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나 공공기관이 중소기업 물품을 구매하는 공공구매제도를 확대(58조->100조원)……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채널 및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중소기업 법인세를 13~25%에서 10~20%로 대폭 낮추겠습니다......전국에 임차료가 저렴한 소규모 사업장인 SOHO를 건립.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읍면동사무소 등 정부 및 공공기관의 유휴공간을 창업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POHO(Public Office Home Office)프로그램도 운영 하겠습니다” 한편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정체성 내지 차별성을 부각하는 정책이 재벌, 공정거래, 금융 정책이다. 금융이라는 단어는 4번 언급되었지만 정책과 관련된 문장은 딱 한 문장이다. “금융 감독 규제구조를 현대화하여 투명성․책임성을 강화한다” 재벌이라는 단어는 2번, 공정거래라는 단어는 1번 사용되었는데, 정책은 오직 한 문장이다. “재벌에 대한 공정거래 감독을 강화한다” 아마도 여기에 불공정 하도급에 대한 엄단(?) 의지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기회, 복지라는 단어의 엄청난 사용 빈도에 비하면 너무 인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 때면 정치인들이 단골로 찾아가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지금 대형 마트/할인점/백화점에 의한 재래시장 및 협력업체에 대한 횡포가 얼마나 극심한 상황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횡포에 우는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말이 전혀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공부문 개혁 한나라당이 전통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정책적 정체성의 근거로 삼아온 공공부문 관련 정책(효율화/합리화/민영화)은 어떨까? 앞의 공약집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다음 정부는 실천하는 ‘실용 정부’여야 합니다. 국민을 위해 더 많은 서비스를 하는 도우미 정부, 예산을 절감하는 효율적인 실용정부……정부조직을 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혁신하겠습니다. 규제를 혁파하겠습니다. 공기업을 효율화하고 민영화할 수 있는 것은 민영화하겠습니다. 기금을 개혁하겠습니다……경쟁이 보장되는 자율적인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강한 나라, 지역 경제가 횔기찬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은 민영화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국민적 공감대가 꽤 튼실한 ‘공공부문 효율화’라는 말도 없다. 이는 민영화, 효율화 등을 시장만능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뉴민주당 선언은 시장만능주의를 주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시장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담보하는 최적의 수단이다. 그러나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시장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는……공공부문을 통해 시장을 보완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의 역할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뉴민주당 선언과 그 추상수준이나 위상이 가장 비슷한 선언은 1999년 6월 8일,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의 공동선언문; ‘유럽 사민주의자들을 위해 전진하는 제3의 길’이다. 거기서는 공공부문 문제를 어떻게 다뤘을까? 그것은 “현 시대의 과제”라는 소제목 아래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정부 재정을 가지고 공공지출을 확대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 때문에 공공부문의 현대화와 근본 개혁은 이제 피할 수 없다. 공공부문은 응당 시민들에게 복무해야 한다. 우리는 과감히 효율, 경쟁, 성과라는 개념을 공공 부문에 도입할 것이다. (중략)” 두 나라가 처한 역사적 상황이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모순(방만한 공공부문)을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효율, 경쟁, 성과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해법(?) 도입을 과감히 선언하였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이 공공부문을 언급하는 품새는 언뜻 보면 ‘제3의 길’을 닮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뉴민주당 선언의 기조는 사민주의 바탕에 신자유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대거 도입했다고 평가되는 ‘제3의 길’ 노선과 많이 닮긴 닯았다. 선언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발전전략('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이 그렇다. 그런데 공공부문에 관한 한 선언은 구좌파 노선을 더 많이 닮았다. 한국의 공공부문에 대해 걱정해야 할 것은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효율화, 경쟁화가 아니다. 오히려 봉건-식민-전쟁(위기관리 국가)-발전국가의 유산과 공공부문 종사자의 사익집단화, 귀족화이다. 요컨대 지금 한국의 공공부문은 ‘시장 만능주의’를 우려 할 상황도,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할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공공부문에 대해 시장만능주의를 우려하는 시각은 아직도 그 문제의식이 영국, 미국 상공을 헤매고 있는, 이념 정책의 오퍼상 격인 진보 지식인과 공기업 노조의 영향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한국 진보의 공공부문에 대한 문제의식 중에서 타당한 것은 재벌.대기업이 공기업을 싼값이 불하 받아 독점적 이익을 누리는 것, 즉 재정과 소비자에 대한 약탈이 아닐까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뻔한 얘기 교육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제3의 길’ 노선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교육 정책의 핵심 슬로건을 ‘교육! 교육! 교육!’으로 잡았을 정도다. 뉴민주당 선언도 23번에 걸쳐서 교육을 언급하였다. 이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의적 공교육실현을 통해 배우고 가르치는 즐거움으로 충만한 학교를 만들어 나간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교육복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고등학교까지 무상의무교육을 확대 실시한다. 대학의 경쟁력강화와 등록금부담을 줄여 나간다. 국민의 평생학습권 보장을 위해 노력한다” 원래 강령적 선언은 오랫동안 고수해 오던 철학, 가치, 정책 기조의 전환을 선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의 공동선언문은 그런 전환점을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세계화와 과학적 진보 속에서 우리는 기업들이 시대에 부응하고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창출해야 한다. 동시에 많은 새로운 기업들이 태어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노동의 성격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생산조직을 국제화하고 있다. 또 새로운 기술은 전통기업을 도태시키면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고용 기회를 창출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것이고, 개인과 기업들이 미래의 지식기반경제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생 동일한 직업을 갖는다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이제 낡았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시대의 대세이며 사민주의자라고 이를 막을 수는 없다. 사민주의자들의 임무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에 뒤쳐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의 교육 관련 철학, 가치, 정책기조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다. 철학, 가치, 정책기조에서 특별히 차별성이 없으면 야당의 특권인 ‘내지르기 자유’를 활용하여 구체적이고 섹시한 공약 한 두개쯤 내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들과 언론에게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런데 교육 정책 기조를 보면 틀린 얘기는 없지만 뻔한 얘기 뿐이다. 뭔가 전환했다는 느낌 내지 뭔가 ‘땡긴다’는 느낌을 주는 공약이 없다. 단적으로 요즈음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등록금에 대한 언급을 보자. 이 단어는 2번 사용되었다. 그것도 멋진 문장의 한 구성 부분이 되었다. “기회의 복지는 사회의 모든 어려운 사람에게 기회의 오작교를 제공할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이 성공할 기회의 오작교, 대학등록금을 낮추어 교육기회를 넓힐 오작교, 농민이 시장개방에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오작교, 한번 실패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오작교로 연결된 기회의 나라(중략)” 그런데 대학과 등록금을 얘기한다면, 등록금 이자율 대폭 인하, 국공립대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투입과 사립대에 대한 자율화, 대학진학율 하향 조정, 과감한 대학 구조조정(통폐합), 시간강사 문제 획기적인 개선, 산학 연계 및 직업 교육의 강화, 대학지배구조 및 투명성 개혁 등 시대가 요구하는 섹시한 공약들이 즐비한데 그런 얘기는 전혀 없다. 초.중.고를 얘기한다면 교원수 대폭 증원, 교원인사평가제도 합리화(학생과 학부모의 평가권 강화), 교사와 교장 자격제한 완화, 학생과 학부모의 일정한 선택권 등 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얘기가 적지 않다. 20페이지 내외의 뉴민주당 선언과 200페이지가 넘는 한나라당 정책공약집의 추상 수준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제목만 비교해도 한나라당의 공약은 손에 잡히는 뭔가가, 땡기는 뭔가가 있다. “맞춤형 국가장학제도 구축”(같은 책 p149~151) 이 제목 아래에는 대학등록금 융자제도 혁신/평생학습계좌제 도입/대학기부금 세액공제로 교내 장학금 대폭 확대 등의 세부 공약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이라는 슬로건 아래 “고교다양화 300” “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 “영어 공교육 완성”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 제목들은 각각 2~3페이지의 상세 공약을 깔고 있다.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 뉴민주당 선언의 정수는 발전전략으로 제시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과 ‘기회의 복지’(Opportunity Welfare)이다. 선언은 포용적 성장을 “사람중심의 경제, 성장의 과실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 환경을 두루 감싸는 질 좋은 성장”이라고 규정한다. 보수진영의 낡은 성장 모델과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첫째, 낡은 성장은 성장의 양을 중시했지만 포용적 성장은 성장의 질을 중시한다. 둘째, 낡은 성장은 물적 자본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지만 포용적 성장은 인적 자본, 다시 말해서 사람을 성장의 최고 원동력으로 삼는다. 낡은 성장 모델이 대기업 중심의 성장이라면 포용적 성장은 무형의 지식, 기술, 아이디어의 보고인 중소기업을 중시한다. 셋째, 낡은 성장 모델은 정부만능주의에 빠져 관치경제를 지향하거나 시장만능주의에 빠져 ‘손 놓고 기다리는’ 자유방임경제를 지향함으로써,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포용적 성장은 시장과 정부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강조한다. 보수주의의 ‘작은 정부’도, 낡은 진보의 ‘비대한 정부’도 동시에 배격하고 ‘강하면서도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한다. 뉴민주당 발전전략의 또 하나의 기둥인 ‘기회의 복지’는 “만인에게 도전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를 뜻한다”고 한다. 이는 낡은 복지 모델과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첫째, 낡은 복지는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과정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기회의 복지는 생산과정 자체에 이미 복지 개념이 포함된다. 둘째, 낡은 복지 모델은 사후적인 복지개념으로 주로 약자에 대한 소득이전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기회의 복지는 결과의 평등에 앞서 사전적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고자 한다. 기회의 복지는 사회의 모든 어려운 사람에게 기회의 오작교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라면 몰라도 2009년의 한나라당에게 과연 ‘성장의 양’만 중시하고, ‘물적 자본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하고, ‘대기업 중심 성장’을 추구한다 하고, 시장만능주의에 빠져 ‘손 놓고 기다리는’ 자유방임경제를 지향한다고 비난하면 어느 정도의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을까? 민노당, 진보신당을 염두에 둔 비난에 대해서도 공감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뉴민주당 선언의 정수는 허수아비를 때리면서 자족한다고나 할까? 경쟁 상대의 얼굴을 극도로 왜곡시킨 사진-하나는 시장만능주의, 다른 하나는 정부만능주의-을 좌우편에 걸어놓고 그 중앙에 photo shop으로 처리한 자신의 예쁜 사진을 걸어 놓고, 자신이 제일 예쁘다는 식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경쟁 상대가 단순, 무식, 과격한 신자유주의 또는 사회주의라면 민주당은 혁신이 필요 없다. 뉴민주당 선언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현재의 총노선이 허접하고, 실천에서 진정성이 없어도 그래도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보다는 나으니까! 어쨌거나 ‘좌파 정권 10년’ ‘대북 퍼주기/조공하기/ 구걸하기’ ‘세금 폭탄’ 등 온갖 악선동이 판치는 곳이 한국 정치판이니만큼, 조그마한 근거만 있어도 ‘대기업 중심 성장’이니 ‘시장만능주의’니 하면서 얼마든지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민주당 선언은 과거(어쩌면 현재) 민주당 또는 열린우리당/참여정부와의 차별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단적으로 앞에서 본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의 공동선언을 보면 노선 전환을 의미하는 문장이 적지 않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은 그런 문장이 너무나 적다. 일찍이 뉴라이트가 빈축을 받았던것처럼, 과거(올드라이트, 구민주당/열린우리당)와의 차별성을 언급한 문장보다 현재 경쟁 상대와의 차별성을 언급한 문장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쨌든 뉴민주당 선언이 과거와의 차별성을 언급한 문장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참패의 원인과 책임은 모두 우리에게 있다……참여정부와 민주화 세력이 표방한 기본가치와 정책방향은 옳았지만, 정책수단은 유효하지 못했다. 우리는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성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았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정책 목표는 좋았지만 유효한 수단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시장역할을 강조하였지만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그래서인지 뉴민주당 선언은 성장이라는 말을 무려 64번이나 썼다. 성장에 대해서 확실히 큰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뿐이다. 성장의 요체인 벤처.중소기업, 청년, 금융, 공공부문, 공정거래, 녹색 경제와 관련해서 그럴듯한, 뭔가 획기적인 전환 느낌을 주는 정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뒷받침하는 유효한 수단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추측컨대 ‘더 많은 기회’와 ‘기회의 복지’가 핵심이 아닌가 한다. 구체적으로 ‘교육 투자’ 혹은 ‘교육에 대한 균등한 기회’와 서민에 대한 ‘즉각적이고 포괄적인 구제’ ‘FTA 철저 대비’ 인 것처럼 보인다. 이 역시 과거에 비해 어떤 점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현실과 유리된 진보 지식사회와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 뉴민주당 선언 뉴민주당 선언의 핵심 철학, 가치, 정책기조는 10여 년 전 쯤 미국과 유럽을 풍미하던 ‘제3의 길’을 많이 따라갔다. 또한 세계적인 최신 유행도 많이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단적으로 ‘환경’을 11번, ‘기후변화’를 4번, ‘녹색’을 2번, ‘온난화’를 2번, ‘에너지’를 4번 언급했다.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여 녹색 일자리를 창출한다……녹색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한다” “우리 세대가 맞닥뜨린 도전은 석유에 기초하고 있는 경제를 새로운 경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주요한 동력으로 이용하는 순환경제로 전환시키는 일이다……환경과 경제의 상생을 도모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제를 구축한다. 이를 위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 협약에 적극 대응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한다” 이는 아마도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의 그것과 (우선순위 측면에서) 확실히 차별화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제3의 길’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 한국 특유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 헌법, 선거법, 지방자치, 벤처, 창업, (공공부문) 민영화 같은 사안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정치적, 정책적 정체성을 과시할만한 재래시장, 자영업, 청년, 중소기업, 공정거래, 농업 관련 공약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런 감동이 없는 뻔한 얘기로 일관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뉴민주당 선언’의 집필자/감수자들은 세계의 추세는 좀 살피는지 몰라도 한국 현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이념.정책의 오퍼상 냄새가 너무 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이, 발이 붕 떠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에 대해 ‘과거 좌깜빡이 우회전’한 것에 대한 반성이 빠졌다거나, ‘한나라당 스럽다’는 비판을 하는 자들은 세계의 추세도, 한국 특유의 현실도, 한나라당 지지율의 비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 총선 과정을 봐도, 뉴민주당 선언을 봐도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현실의 고통, 불만에 대한 반응성이 확실히 떨어진다. 한나라당의 공약은 민주당 보다 확실히 구체적이며, 섹시하고, 뜨거운 지지 세력도 뜨거운 반대 세력도 있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은 복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또 시장만능주의를 성토하는 등 나름대로 진보/좌파적 정체성을 견지하려고 애를 썼지만 뜨거운 지지 세력도 뜨거운 반대 세력도 만들어 질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공약만 놓고 본다면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끈질기게 저공비행을 하고 있는 민노당, 진보신당의 지지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무현의 억울하지만 장렬한 죽음으로 인해, 아니 이명박과 검찰과 언론의 천민적 난동으로 인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은 엄청나게 과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이른바 친노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보수의 오버, 진보의 오버 나는 1986년~1993년 노동운동 판에 있으면서 수 십개의 중소기업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일을 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기업과 시장을 너무나 모르던 혈기 넘치던 20대 중.후반이 주도하던 거친 노동운동으로 인해 멀쩡한 중소기업들이 너무나 큰 타격을 입고 끝내 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어쨌든 이 비운의 중소기업들을 피땀흘려 일구었던 기업주, 관리자, 협력업체들의 가족, 친인척, 지인들이 어떤 심정일까? 아마도 하늘이 두쪽나도 1980년대적 철학, 가치, 기풍을 가진 진보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요컨대 한나라당은 진보개혁 세력 만큼이나 철천지 한(정치적 에너지)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위에서 보았듯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진보개혁세력보다는 시대와 현실을 잘 꿰뚫고 있다. 지적 역량이 뛰어나다. 대영남이라는 지역 기반을 끼고 있고, 서울에서도 상승세다. 한나라당은 정말로 정치적 강자이다. 민주당 보다 정치적 기초 체력이 훨씬 좋다.
지금 한나라당과 범보수가 일시적이나마 현격히 찌그러진 것은 진보개혁 세력을 과소평가한 탓이다. 노무현 하나만 정치적으로 죽이면 무서워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KBS에서 그랬듯이) 노무현에게 정말로 상식을 초월한 몹쓸짓을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범보수의 오버가 화를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진보개혁 세력의 오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정치적 기초체력이 범보수에 상대가 안될 정도로 취약한 상황에서 이는 대재앙을 예고한다. 뉴민주당 선언이 정치노선상의 전환점 내지 이정표가 되지 못하고 뻔한 소리로 일관한 것은 민주당 정치인의 문제의식이 현실에서 붕 떠있고, 친민주당 이익집단과의 결합도도 낮은 것이 1차적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헌법, 선거법 같은 갈등 사안을 토론을 통해서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버하지 말고,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기초체력을 냉철하게 뜯어보아야 한다.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없는 존재들이 상대의 떡수에 힘입어 집권을 넘보는 것은 민족적 불행이다. 한나라당과 범보수를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정치세력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계속)
**다음 글은 시대와 현실 통찰, 핵심 가치와 정책 비평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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