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의 문제의식은 <경향신문>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의 다음 글과 일치합니다.
「가식적인 찬사는 그를 거짓되게 할 뿐이다. 그의 실패에 깊이 절망해 본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의 고뇌, 그의 슬픔에 닿을 수 있다. 그를 정당하게 비판했던 자만이 그의 죽음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를 올바로 미워한 자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의 돈 많은 친구나 한 자리씩 차지했던 고위관료, 그의 은혜를 입은 지인들이 진정 노무현의 가치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그들이 이 거리에 감도는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가. ‘빽’ 없고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노무현을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정작 그가 죽어서야 그를 되찾을 수 있었다 (중략)
그래, 다시 시작하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리가 이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이 ‘살인(殺人)의 권력’ 앞에 이렇게 초라하고 무기력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직 순수와 정의의 뜨거움으로 달리던 그 많던 노무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대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던 열정들은 어디로 갔나. 국가는 다시 압제의 도구로 변했고,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시민사회는 죽어가고 있다. 하나의 노무현이 죽어 수만, 아니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는 대반전을 맞이하자. 그래서 피 끓는 청춘의 시대로 돌아가자. 오, 정녕 꿈인가?」
정녕 꿈 일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이 몰상식하고, 후안무치하고 잔인한 정권에 맞서 내전을 일으킬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해달라”, “...해라” 또는 “탄핵서명” 하면서 되지도 않을 요구를 하며 자위할 수 없기에, 일상의 무관심과 무기력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가끔 거리시위를 나가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그렇지만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기를 원하기에
구체적인 실천의 안으로서 제 생각을 제안합니다.
먼저 제 제안의 전제를 밝히면,
1. 저는 국민들이 MB정권을 응징하는 방법은 어쩔 수 없이 투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투표에서 승리를 하려면, 지난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를 한 것에서 보듯 유권자들에게 선택지를 제대로 줘야 한다고 봅니다.
3.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 제대로 된 선택지를 주어야 합니다.
4. 그런데 앞서 이대근님의 컬럼에서와 같이, 노무현 측근들을 비롯한 현 야권정치세력은 서로 ‘노무현 정신’의 적자를 자임하며 선거에 임할 것이고, 결국 제대로 된 선택지를 못줄뿐만 아니라 이번에 조문에 참여했던 유권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제대로 된 선택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제 생각으로 노무현이 좌절한 개혁을 실행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선택지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노무현 정신 계승으로 비춰질 것임은 분명합니다. 노무현이 실패한 개혁, 저는 <언론개혁>, <검찰개혁> 그리고 <선거법 개혁> 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언론, 검찰개혁은 야권의 정치세력은 누구도 언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법 개혁>은 노무현 정권 때에서 보듯 여든 야든 모두 반대한 개혁입니다. 헌법보다도 고치기 힘든 법이 선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치발전을 위해서 , 국민이 합리적인 투표를 할 수있게 하기위해서 선거법 개혁은 정말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국민이 강제해 내야하고 그것이 진정한 ‘노무현 정신 계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투표가 사표가 안 되는 선거법이 있을 때, 합리적인 유권자들이 기권을 하지 않고 투표장에 올 것임은 분명하고, 새롭고 개혁적인 신진 정치세력이 형성될 수 있고, 지역감정을 매개로 한 정치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선거법 개혁은 현 정치세력에게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거법 개혁’ 서명운동을 한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누구에게 “...해라”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냥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탄핵서명”을 받듯이 국민들로부터 “나는 앞으로 이러이러한 공약을 내는 후보들에게만 투표를 하겠다”라는 서명을 받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이번 10월 재보선부터, 내년 지방선거 때고, 그리고 다음 총선 때도 투표일마다 그 서명을 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그 서명을 상기시키고, 그 공약을 내건 후보가 누구인지를 알려줘서 해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적어도 높은 득표율을 얻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만의 힘으로 선출된 후보들이 직업적인 정치영역에서 그 공약을 실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앞서 김대호 소장님의 글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다-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부쳐->에서 김대호님은 5가지의 실천지침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 글의 댓글 중에 ‘조덕연’님은 검찰개혁을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안하시면서 “이상의 내용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치세력이 나오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나가자는 것입니다. “나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올 수 있는 조건을 우리가 만들자는 것입니다.
분향소에서 “탄핵서명”을 하는 사람들, 그 분들은 뭔가 미안하고, 분노하고, 돕고 싶은 마음에 그 서명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것임은 여러분도 아실 것이고, 결국 그 분들의 그 작지만 정성스런 마음은 패배의 기억으로 그 분들께 돌아갈 것입니다. 노무현은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유서가 명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7. 너무 슬퍼하지 마라.
8.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9. 미안해하지 마라
10.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11. 운명이다.
얼마 전 몇 분들과 노무현의 유서를 보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때의 논의에 힘입어 제가 갖게 된 결론은 ‘노무현의 유서’는 ‘노무현의 임종게(臨終偈)’이고, 그 큰 구조는 불교의 근본원리인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돼있다. 1~4행은 고(苦), 5,6행은 집(集), 7~9행은 멸(滅), 10,11행은 도(道) 그리고 12~14행은 장례절차를 말한 것으로 임종게에서 벗어난 일반적 유서의 내용으로 봅니다.
분석의 이유를 설명하면 길어지니 이 글과 관련한 부분인 멸(滅)(7~9행)과 도(道)(10~11행)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합니다. 멸(滅)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입니다. 생사에 대한 노무현의 깨달음. 우리는 분향소에서 무수히 많은 ‘너무’ 슬퍼하는 사람들, 미안해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노무현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10,11행, 즉 도(道)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보면 왜 그러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마치 생전에 부산 선거에서 패배한 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언명입니다. 노무현은 누굴 원망하며 살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듯 바보처럼 자신의 원칙을 관철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깨달음이 바로 임종게의 절정, 멸(滅)의 3행 중에서도 중앙에 배치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입니다. 이 부분을 ‘죽음’을 강조하면 죽음을 가볍게 여긴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일관된 ‘삶’을 생각한다면, 그것의 ‘한 조각’인 ‘죽음’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으며 냉철하게 자신의 원칙을 바보처럼 관철해왔던 노무현 ‘삶’의 연속이 됩니다.
노무현 서거 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발표한 글을 보면 노무현은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라며 회원전용 비공개 인터넷카페를 운영했고, 그 카페에서 ‘돈이 적게 드는 매체’인 인터넷에 올라있는 글들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분노와 증오는 넘쳐나지만, 사실과 논리는 부족하고, 깊이도 모자라고, 비슷한 생각끼리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고 충돌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협업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토론과 검증을 통하여 완성도를 높여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임종게의 “누구도 원망마라, 운명이다”로 표현됐다고 봅니다. 즉 이는 남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수행해야 할지 그 길(道)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때문에 9행 ‘미안해하지 마라’와 10행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를 붙여 읽고 통합과 화합을 해야한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노무현의 깊은 뜻을 오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전태일 열사처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고 유서에 쓸 수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그런 중의(衆意)성과 철학이 베어 있기에 노무현의 마지막 글이 삶의 궁지에 몰린 한 풍운아의 유서가 아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의 이름이 ‘노무현 정신 계승 정치개혁 국민행동’이든 뭐든 만들어서, 노무현 개혁의 핵심 - 언론, 검찰, 선거법 - 을 공약으로 내건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겠다는 서명운동을 벌여나갔으면 합니다. 그냥 저 혼자 아고라에 청원을 넣는 식은 노무현이 바랬던 ‘협업’,‘역량확대’,‘토론과 검증’이 아니기에, 생전에 그 분이 눈여겨봤다는 사회디자인연구소의 내공과 열정을 믿으며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