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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신당 건설 투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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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31) | 추천 (0) |점수 (5) | 2009-05-20 18:20:29 김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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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의 추억, 쪽박의 상처(Trauma), 가투조직의 관성과 투쟁-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용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1~2년 내에 제대로 된 진보개혁 정당의 이념적, 정책적 초석을 놓는다는 목표를 명확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연구소의 존재와 활동을 임박한 정당 건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의미 부여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기존에 모인 돈과 사람의 1/4도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과 대등하거나, 민주당을 압도할 수 있는 진보개혁 정당 건설의 꿈을 꾸는 사람들의, 어쩌면 황당하기조차 한 포부, 기백, 요구야말로 연구소의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년을 지내놓고 보니 이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는 의외로 양, 질적으로 변변찮은 에너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에너지의 원천이 사회, 역사, 자아(세대)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통찰에서 나오는 위기의식과 역사적 사명감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내쫓기고 무시당한 사람들의 즉자적 분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에너지가 정치와 정당의 지독한 후진성이 모든 분야에서 사회 발전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짓누르는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해체-참여정부에 대한 무차별 부정.폄하 세력, 호남 지역주의 세력, 정치 행태 측면에서 지독한 양아치 세력의 득세-대선 참패-유력자들의 기득권 중심의 총선 공천 등에 대한 격분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지난 1년과 향후 1년은 기존의 에너지를 새로운 에너지로 변환시키고, (개혁당, 열린우리당 경험이 없는) 다른 강력한 에너지와 결합을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연구소의 본령이 새로운 진보개혁 정당의 콘텐츠(정치노선)와 조직노선을 정립하는 것이다 보니 이를 둘러싸고 심심찮게 내부 논쟁이 벌어졌다. 조직 노선 문제는 사실 기간당원제 문제와 정당(정당원)의 물질적, 조직적 기반 확보 문제였다. 한마디로 어떻게 먹고 살며, 어떻게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내는 대중 활동을 전개할 것인가 문제였다. 콘텐츠 문제는 연구소와 정당에 대한 투자 포트폴리오 문제였다. 이 모든 논쟁의 뿌리에는 열린우리당의 경험과 정당 환경의 변화와 주체역량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가 깔려있었다.
현대 정당의 알파와 오메가 현대 국가에서 정당의 알파와 오메가는 선거에서 표를 많이 얻는 것이다. 그러려면 국가경영 실력이 있어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해 더 자유롭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어보여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와 요구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실력이 있어 보여야 한다. 투표 외에도 생각하고 공부할 거리가 너무나 많은 유권자들은 주저리주저리 써놓은, 좋은 말이 즐비한 강령, 정책을 볼 여유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은 선거에 참여하는 정치조직의 주요 인물의 이력, 배경, 언행, 인상 등을 보고 표심을 결정한다. 이는 정치선진국도 후진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마 100년이 흘러도 200년이 흘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만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달리 각종 선거에서 상대 다수 득표자(1위)를 제외한 나머지의 득표수가 거의 무의미하기에 사표 방지 심리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여기에 더하여 (승자들이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니) 가장 유력한 반대자에게, 비록 선호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표를 몰아주는 ‘응징 투표’ 심리가 강력하게 작동한다. 지역주의는 기본이다. 따라서 양대 정당 이외의 정치조직이 표를 모으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문국현 등 참신해 뵈는 정치 초보자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좌절되면서 정치(국가경영)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혜성처럼 부상하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심한 편이다. 어쨌든 한국 선거에서 상징적인 인물이 중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새로운 진보개혁 정당의 가치를 상징하는 잘 알려진 인물이 없거나, 모실 수 없다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해결책은 뻔하다. 수십 수백만 표를 모을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을 각고의 노력으로 모셔오든지(안되면 꿩 대신 닭이라고 약간 유명세가 덜한, 수천 수만 표를 모을 수 있는 인물들을 여럿 모셔오든지), 아니면 스스로 새로운 진보개혁 정당의 가치를 체현하는 괜찮은 인물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되는 길은 기본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개인적, 조직적 실천을 끈질기게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그 모범은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이나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이다. 이들은 날카로운 이슈를 부여잡고 다양한 방식으로, 각종 광고마케팅 기법을 총동원하여, 끈질기게 투쟁을 전개하였다. 물론 의석이 있는 정당이라면 의정활동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선거에 출마를 하면 말과 글을 통해서 할 수 있다. 문필 능력이 있으면 책, 강연, 기고, 메일, 블로그 등으로 해야 한다. 외과 수술하는 집도의 세상의 대립갈등 전선은 점점 복잡다변하고 있다. 민주-반민주, 노동-자본, 한민족-미.일(제국주의), 친북좌파-친미우파, 영남-호남 등 진보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전통적인 대립갈등 구조는 대중 동원력과 정치적 호소력을 급속히 상실하였다. 반면에 변호사-변리사, 의사-약사-간호사-의료소비자, 지방 중소규모 의원-수도권 대형 병원, 보건복지부 관료. 보험공단-민간의료보험업자-병. 의원, 시간강사-전임교수-학교재단-학생. 학부모, 서울소재 유명대학-지방대학. 전문대학, 실업자-비정규직-정규직, 청년세대-기성세대 등 이해관계자간에 수많은 대립. 갈등 구조가 생겨났다. 이 구조는 결코 고정불변이 아니다. 이해관계자들은 사안에 따라 대립하다가, 사안에 따라 연대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국제 정치, 금융, 무역 질서로 인한 제약도 많다. 좋은 의도를 나쁜 결과로 되갚는 풍선효과도 심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복잡 미묘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대립. 갈등 전선에서 정의의 칼을 정교하게 운용할 전문가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이 정의의 칼은 사무라이처럼 휘둘러서 안 된다. 외과 수술하는 집도의처럼 운용해야 한다. 물론 이 전문가는 교수, 박사, 연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 역시 자신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익집단의 포로가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가는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않고, 역사의 방향감각도 날카롭게 서 있고, 공공적 마인드가 튼실한 정치인적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세칭 전문가의 지식과 감각을 십분 활용할 줄 알고, 대중의 열망과 감각을 아는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비정치인 중에서 가장 정치적 잠재력이 높은 사람은 박원순이다. 그의 인생역정과 체현하고 있는 가치가 군계일학처럼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하마평이나 권유만으로 따지면 박원순은 안 해 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대통령 후보, 총리, (한나라)당대표, (한나라당)공천심사위원장, 서울시장, 장관, 신당 대표 등등. 그런 점에서 돈을 쫓으면 돈이 달아나고, 권력을 쫓으면 권력이 달아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박원순은 결코 권력을 쫓지 않았고, 단지 공적인 가치를 치열하게 추구했을 뿐이지만, 권력을 가져라고, 심지어 대권을 잡기 위해 떨쳐나서라고 수많은 사람이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원순은 대체로 미시적인 개혁에 천착했고, 또 남이 잘 안하거나 못하는 일을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한국의 진보. 보수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갈등 사안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박원순과 참여연대는 재벌의 위세에 눌려서 잘 못하거나, 유력 정치인과 인간적 관계 때문에 잘 안한 운동을 성과적으로 벌렸다.(소액주주 운동, 낙천낙선 운동, 고소. 고발 운동) 또한 다른 사람은 끈기, 근면성, 네트워크, 아이디어 등이 모자라 못한 사업도 성과적으로 벌렸다.(자잘한 입법청원,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 이 정도 만으로도 한국의 정당 구도를 뒤흔들 수 있을 만한 정치적 힘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모순. 부조리가 판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 보다 훨씬 파급력과 대중동원력이 큰 쟁점들이 많다. 이는 한국 연구소와 새로운 정치세력의 거대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슈파이팅을 포사격에 비유하면, 연구소는 일종의 관측병과 계산병이다. 정치조직이 운동을 통해서 제기할 이슈나 타격지점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즈음은 수백만 네티즌이 다 소총수이자 포병이기 때문에 관측병과 계산병이 타격지점을 적확하게 잡아주면, 정치조직이 보유한 화력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지원을 받을 수가 있다. 그만큼 관측병과 계산병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빼어난 관측병과 계산병(연구소), 그리고 실제 포를 쏠 수 있는 약간의 정치포병대만 있으면 몇 년 만 잘 활동 하면 박원순 보다 훨씬 큰 정치적 힘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동안 사회디자인 연구소는 우리의 화력에 걸맞은 적절한 타격지점을 알려주지 못하였다. 반성한다) 뿌리 깊은 가두투쟁의 관성 창당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당의 콘텐츠를 핵심 정책 10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도 만났다. 하지만 이 정책은 수많은 시민운동, 이슈 파이팅(퍼포먼스), 고소. 고발, 논평, 성명서, 매체 기고, 블로그, 의정활동, TV토론 등을 통해서 구현되어야 한다. 모든 말과 행위들은 언론, 지식사회, 네티즌의 입방아를 견뎌내고, 더 나아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내공을 담고 있어야 한다. 행여 TV토론에 참여하거나 매체에 기고했을 때 단박에 박살이 날 정도로 얄팍한 수준이면 정당의 위신을 무참하게 깎아먹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정당의 핵심 정책은 무슨 교실 정면, 태극기 옆에 걸려있는 급훈 같은 존재가 아니다.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강령은 좋다. 그러나 읽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읽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들의 구체적인 의정활동이나 이슈파이팅을 통해서 그 강령과 정책이 녹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석이 없는 신생 정당은 그렇게 해서는 죽음이다. 자신의 고유한 가치가 새롭고 강력하지 않으면 결국 노무현의 후광을 덮어쓰려는 얄팍한 술수를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무현을 두 번 죽이는 결과가 될 수가 있다. 어느 사회든지 지식인 사회의 공공연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은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가 없다.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은 지식인 사회의 공공연하고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은 지식인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소수의 꼴통 지식인들은 민노당, 진보신당 지지할지 모르지만, 결코 다수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을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지식인은 정말로 드물다. 오히려 한나라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지식인이 많을 것이다. 지식정보화로 인해, 콘텐츠나 전문가의 위력이 점점 강해지는 시대에, 지식사회를 장악할 자신감이 없는 정당은 민노당, 진보신당 정도의 위상이 제격일 것이다. 결코 역사의 주도권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가두투쟁에 익숙한 진보개혁 세력은 무슨 무슨 ‘연대’에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연구소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은 여간 심각한 약점이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연구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사회디자인연구소를 하기 전까지는 정당에 관심이 있거나, 당원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당을 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고 하거나, 출마하려는 지인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아니면 정당을 통해서 인맥을 쌓고, 이권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그나마 비교적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개혁당이나 (개혁당을 거쳐서) 열린우리당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유쾌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떤 사람은 개혁당 해체 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어떤 사람은 열린우리당의 당내 헤게모니 투쟁과정에서, 또 어떤 사람은 열린우리당 해체와 대통합민주신당 건설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다. 이들이 정당에서 느끼는 비매력의 핵심은 몇몇 유력자들이 순수한 다수 당원들을 이용하고 버린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이 아니라도, 견실한 직장인이 정당에 대해 손사래를 칠 요소는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디자인연구소를 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정당 아니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이들 대부분은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의 대박을 경험하였고, 그 몇 년 뒤 열린우리당 해체-대통합민주신당 창당-대선. 총선 과정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어쨌든 이들에게 정당은 겨울에 입는 외투처럼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없었다면 연구소가 감히 ‘집권 가능한 진보 정당 건설’이라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호소력과 친화력이 떨어지는 목표를 당당하게 표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노골성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좀 뻔뻔스럽게 구는 정치판에서는 이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해 보았다.) 어쨌든 대박의 추억과 쪽박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연구소를 정당 건설 공사장의 한 구석에 갖다 놓은 (임시 사무실용) 컨테이너 박스 정도로는 인정했다. 그래서 1억5천 정도의 자금이 모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에게 연구소는 정당이라는 건물을 짓고 나면 필요 없는 존재였다. 한마디로 가건물이었다. 아마도 정당이 서고 나면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콘텐츠를 얼마든지 저렴하게 가져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에는 수많은 전문가들, 자산가들, 대중단체들, 지역기반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실 개혁당을 성공시키고, 그 핵심 세력을 모아서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사람만큼 정치적 대박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탄핵을 계기로 과반이 넘는 집권 정당에서 상당한 지분을 가진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당연히 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진보개혁 정당을 만들면 또 그 역사가 반복되리라 생각을 하였다. 한편 과거의 아픈 경험을 되살려, 이전처럼 당의 유력자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당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기간당원들이 주인 되는 정당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 열망은 스타들과 전문가들이 자신들이 만든 정당이라는 큰 배에 ‘탑재’되거나 ‘승선’하는 존재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선거(표모으기, 돈 모으기, 선거운동원 모으기)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온-오프라인에서 당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는 ‘기간당원’들이 당의 주인이고자 하는 당에,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스타들이 얼마나 올까? 거칠게 복기해 보면 열린우리당에서 기간당원제를 둘러싼 대립구도는 대중적 기반(대중적 인지도)은 약하지만 기간당원으로서의 의무는 충실히 한 신진 세력과 당 일상 활동에는 충실하지는 않지만 선거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는 조직적(호남향우회 등), 사회적 기반을 가진 당 기득권 세력의 대립구도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다 잡아놓았던 물고기조차 달아난 마당에 힘 관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전된 상황에서, 스타와 전문가라는 물고기들이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가 변변찮은 기간당원들의 그물망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까?
살면서 보니 나이 사십 중반이 되도록 무슨 무슨 '연대'에는 참여한 경력은 있어되 '연구소'-물론 무늬만 연구소가 아닌-에 참여한 경력이 없는 사람은 십중팔구 세상을 압도적으로 '힘'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다. 바로 보는 것, 바로 아는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이는 모순이나 대립물이 아주 뚜렷하던 반독재 민주화 투쟁 시대의 관성이다. 열린우리당 시절 한해 수십억원의 국가 재정을 지원받아 운영하던 열린정책연구원이 '비전 2030'같은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 시대의 관성을 가지고 있던 의원들과 콘텐츠를 고민할 이유가 없는, 공천=당선인 지역의 의원들이 계파 하부 조직원들을 먹여살리는 곳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바로 보고 바로 아는 것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연구소를 지배하면 똑 같은 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재정이 열린정책연구원에 비해 수십분의 일도 안되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건축 공사장의 컨테이너 박스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정당의 도구적 기능을 살릴 것인가 정당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물론 정책 입안 및 실행의 지렛대이기도 하다. 당내 민주주의는 당의 도구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 사회적으로는 다수의 지배는 불변의 법칙이지만, 기업은 대개 1주 1표 주의를 근간으로, 상법에 근거하여 대주주 독재를 실현하고 있다. 그래야 자신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물론 기업, 업종의 특성에 따라 종업원이 주인이 되는 방식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혁명투쟁기라면 볼셰비키 당이 더 도구적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다. 어쨌든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표를 많이 모아 올 수 있는 사람들; 대중 스타들, (정치력이 있고, 공공적 마인드가 튼실한) 직능 기반이 있는 전문가들/시민운동가들/오피니언 리더들, 지역기반이 튼실한 정치인 등이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정당의 도구적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기간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은 그런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20세기 초 중반의 유럽은 계급 대립이 주된 갈등 축이었다. 계급 간 구분선도 뚜렷했다. 계급내 이해관계와 생활양식의 동질성이 강했다. 계급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도 격렬하지 않았다. 매체도 상대적으로 미발달해서, 인적 접촉에 의한 정보. 정책 전달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대중 행동(혁명운동/ 바리케이드 전/가두투쟁)의 전통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이 모든 조건들은 수십 수백만 명의 계급정당, 대중정당을 필요로 했고, 또 가능했다. 이런 정당을 지탱하는 존재가 바로 기간당원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중은 다중 정체성(소비자, 납세자, 특정 산업. 업종 종사자, 계급, 계층, 세대, 지역민, 학부모……)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정당, 시민단체, 매체 등을 활용한다. 특정 정치세력이나 매체에 대한 충성심은 점점 약화된다. 당연히 Swing voter가 늘어난다. 자기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이슈. 가치를 기준으로 표심을 결정하고 행동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이반하기도 한다. 노무현 현상도, 이명박 몰표도, 촛불시위도 대중의 바뀐 행동 특성의 표현이다. 최근에 일본 공산당이 득세를 하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을 일관되게 견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념을 연성화시키고, 무엇보다도 일본 주류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잘 보살폈기 때문이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득세하는 것도, 민주당이 호남에서 외면 받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요컨대 과거에는 대중 스타와 전문가의 역할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이 부상하는 이슈에 응답할 전문가를 영입하고, 새로이 부상하는 시민운동과 결합하는 일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시대가 바뀌면 운동 방식과 조직원리가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2008년 봄 이명박 정부의 졸속적인 쇠고기 협상의 헛점을 파헤친, 웹을 활용한 대중의 집단지성이 해결할 과제는 결코 많을 수가 없다. 촛불의 추억, 개혁당 대박의 추억, 쪽박의 상처(Trauma), 가투조직의 관성을 벗어나야 한다.–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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