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으로인해 글 싣는 순서를 바꿨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3. 이승만, 그는 무슨 말을 했는가?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이 건국정신이 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이 헌법정신이 됐습니다.”
(조갑제, 2009.3.6 강남교회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관’ 강연 중)
저는 대한민국 건국정신에 관심이 많은데, 이미 이렇게 명쾌한 답을 내린 분이 계시더군요.
제가 보기에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건국’이 반쪽짜리, 불완전한, 미완성의 건국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헌의회 구성과 제헌헌법 제정, 그리고 남한단독정부 수립이 이승만을 추종하는 친일반민족, 반공, 반통일, 수구기득권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그 건국(재건)을 인정할 수 없고, 정통성도 없고, 부끄러운 미완성의 건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승만의 정신’이 ‘건국정신’ 그리고 ‘헌법정신’이 됐던 것일까요?
건국(재건)을 위한 제헌을 위해 구성된 제헌의회 당시 ‘이승만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요?
1948.7.1 제헌의회 22차 회의, 헌법기초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가는 제2독회가 시작하자마자
이승만 의장은 첫 발언권을 얻어 긴 발언을 합니다.
“우리가 내부에서 토의나 혹은 어떤 시비를 하지 말고 세계에 선포한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며칠 안에 헌법을 제정해 가지고서 정부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선언한 것이 허언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만 목적을 삼아가지고 일심으로 그 마음으로 나가야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토론이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으나 지금 정세를 보면 불온한 장난을 하는 도배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빨리 헌법 만들어서 독립국가 만들어야하니까 토론 길게 하지 말고, 토론 길게 하는 것은 빨갱이로 생각할 것이니 잘 알아서 토론하라는 말로 해석됩니다. 소위 이런 ‘정세론’이 헌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때는 ‘國號’문제로 얘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승만의 위협성(?) 제안으로 ‘國號’는 일단 ‘대한민국’으로 하고 나중에 혹시 고칠 일 있으면 고치자 이런 식으로 통과됩니다. 그런데 이승만이 이렇게 ‘불온한 장난을 하는 도배(徒輩)’운운하며 색깔까지 덧씌우며 ‘정세론’을 강조한 것은 바로 전날 이문원 의원의 비판에 대한 공격으로 보입니다.
“이 국회는 너무 ‘정세론’적으로 흐르는 유감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예를 들것 같으면 ‘하루빨리 우리는 정부를 세워야 될 것이다’ 이러한 말을 합니다. (중략) 나는 오히려 그러한 ‘정세론’으로 흐르지 않는 우리의 기본적 태도에 치중을 해서 그야말로 인민이 갈망하는 헌법을 반드시 통과함으로써 그 민중의 직접선거를 받아서 완전자주독립을 국내적으로 실현이 되고 국제적으로 승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어떠한 간부진영에서 의식적으로 모순된 헌법을 만들어 가지고 자꾸만 이것을 통과시켜 가지고서 어떠한 자기의 의도를 달성해 보려고 하는 것은 인민이 우리를 보낸 본의가 아니고 극단으로 말하면 이것은 어떠한 자기의 개인주의에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을 받아도 변명할 자료가 없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국회가 뒤집어집니다. 발언 취소해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한다. 다시 이문원에게 발언기회가 옵니다.
“본인이 간부를 지칭한 것은 기초위원장이나 우리 국회의장 진영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입니다. 더군다나 ‘국회의장’ 즉 이승만을 두고 한 말이라고 솔직(?)하게 고백까지 했으니...
이문원은 제헌헌법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전, 헌법기초위원회가 헌법 초안을 심의하면서,
‘양원제를 단원제’로, ‘내각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대통령 직선을 간선’으로 바꾼 것을 두고,
한민당 세력과 이승만 세력 양쪽을 직공한 것입니다. 당시 사회는 부의장 김동원이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직권으로 휴회를 선포합니다. 이문원은 1906년생이니까 당시 42세. 한독당원이자 대동청년단원으로 익산에서 무소속으로 제헌의원이 된 소장파 의원이었습니다. 이후 반민특위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다가 국회프락치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으니, 이승만의 ‘불온한 도배’표현은 예언처럼 적중했다고 해야 할까요?
여하튼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속히 토의가 진행되다가 제3독회 중 노동권의 이익균점권 관련 조항에서 다시 긴 토론이 벌어집니다. 이 조항은 이미 제2독회에서 가장 긴 토의를 거쳤던 조항이기도 합니다. 이 때 다시 사회를 보던 이승만 의장이 발언을 합니다.
“지금 이 조건이 이익을 균점한다는 것이 그렇게 잘 되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지금 근로대중에게 이 조건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한다 하더라도 시행을 하자면 잘 아니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해서 5개월이나 6개월 안으로 근로대중으로부터 나와서 이것을 교정하자는 얘기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국회에서 대다수 헌법을 교정해야 될 것 같아요”
이승만은 ‘제헌’을 하면서 이미 ‘개헌’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개헌 할 것인데, 괜히 토론 길게 하지 말고, 일단 헌법 만들어서 빨리 독립정부를 세우는 것에만 전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정부의 대통령은 바로 자신임이 이미 결정돼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이는 빨리 대통령 되겠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미완의 과제는 대통령 된 다음에 해결해 나가겠다는 속내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내각제’가 ‘대통령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내각제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었습니다. 한민당 세력은 내각제 하에서 실권을 잡는 총리를 하고,
이승만은 명목상의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계산이었고, 무소속도, 헌법전문위원들도, 양심적 민족세력도 모두가 독재를 방지하고, 당시 더 친숙했던 내각제를 선호했던 것입니다. 헌법기초위원회에 제출됐던 헌법초안이나 임시정부 임시헌장도 모두 의원내각제였기에 헌법적 전통에서 봤을 때, 당시 이승만이 대톨령제를 주장하는 것이 생뚱맞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승만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수를 써봅니다. 헌법기초위원회의 결정을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뒤집으려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전원위원회는 비공개로 할 수 있으니 의원들이 여론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을 따라줄 것이라고 기대를 했던 모양입니다.
원래 헌법초안을 보고하기로 했던 6월21일 서상일 헌법기초위원장은 인쇄를 못했다면서, 인쇄를 하려면 이틀이 걸리는데, 그동안 휴회를 할 것인지 아니면 비공개로 전원회의를 하면서 몇 가지 원칙문제를 토론할 것인지를 결정해달라고 동의(動議)를 합니다. 즉 ‘놀지 말고 일하자’ 뭐 이런 논리로 슬쩍 전원위원회를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의 원칙문제를 비공개로 한다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는 반대의견 (이항발, 문시환, 김병회) 에 부딪치고, 다급해진 이승만이 직접 발언을 합니다.
“이 중요한 헌법기초문제를 가지고 공개도 말고 전원위원회를 열어 가지고 다시 교정을 하든지 그냥 내놓든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여기에 더 이의가 없이 전원위원회를 열어 가지고 거기에서 여러분이 모여서 의론해 가지고 작정을 하는 것이 대단히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중략) 국회전체에서 반수이상 되시는 분들이 그것을 교정해야 되겠다는 의도로 작정된다면은 그 때는 이것을 또 교정을 해가지고 나와야 될 것입니다”
결국 이승만은 제헌의원 과반수 이상은 자신이 제안한 대통령제를 지지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표결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한 것입니다. 이정도 얘기했으면 제헌의원들이 못이기는 척하고 이승만의 의중을 헤아려 줄만도한데, 놀랍게도 전원위원회 개최안 자체가 부결됩니다. 재석 175, 찬성 12, 반대 130. 부결도 그냥 부결이 아니라 열배 넘는 표차의 부결.
그리고 더구나 거수표결로 공개투표였습니다. 이승만의 면전에서 이승만의 뜻을 거스른 제헌의원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입니다. 이승만 덕에 국회의원 된 사람들이 이승만 반대하는 거수를 하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이승만 국회의장의 표정이 어땠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해방공간을 뚫고나와 정적들을 물리치고 대통령 후보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고, 이제 고지가 눈 앞에 보이던 시점에서 이 표결결과에 이승만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이승만이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 수를 부립니다. 바로 땡깡.
이승만은 헌법기초위원회 제3독회 최종회의에 참석해. ‘대통령제로 바꾸지 않으면 자신은 대통령직을 맡지 않고 일반 시민으로 남아 개헌운동을 하겠다’고 협박을 한 것입니다. 결국 이승만을 빼고 정부수립을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한민당 세력은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가 짬뽕이 된 헌법안을 급조하게 되고, 다음날 이 법안은 헌법기초위원회안으로 결정이 돼, 결국 본회의에 올려지게 됩니다.
앞서 소개한 이문원 의원의 발언 속에 있는 “간부진영에서 의식적으로 모순된 헌법을 만들었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사정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결국 이승만과 한민당의 속셈이 다른, 동상이몽의 해석으로 탄생한 제헌헌법의 정부형태 관련 조항은 이후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제헌의회 속기록을 통해 본 이승만은, 정부형태와 관련해서는 이틀간의 휴회를 하면서까지라도 토론을 빙자한 의사관철을 하려 했지만, 다른 사항에서는 무조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행동의 배경에는 일단 독립정부 수립이 최우선이고, 헌법은 그 후에 고쳐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에 별로 맞지않는 노동권의 이익균점권에 대한 토론이 길어지자 이승만이 한 발언은 그런 일관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 헌법이든지 내놓고 보면 노동하는데 이것을 특히 보호한다고 헌법에 들어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조목(이익균점권 조목 - 필자)을 여기다가 넣는다고 하면 지금 밖에 앉아서 우리가 공산색채를 띠었다. 국회에 어떤 다수공산당이 들어가 가지고서 이것을 토의하지 않는가, 이런 우려가 또한 없지 않으니까 또 따라서 그 정부(미 군정 - 필자)와 연락해서 우리 하려고 하는 것을 도리어 방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여러분에게 경고하는 것은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는 헌법에 여기 넣은 것이 충분히 된 것으로 양해들 하시고 이만치 토의가 되었으니까 가부 묻자고 동의 재청하셔서 통과해가지고서 그것을 결정해 가지고서 이 헌법을 하루바삐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이 국법을 오늘 결정하였다가도 내년에 가서 달리 다수결의해가지고 고치자고 하면 우리가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여지를 남겨놔서 이 다음 변경 되는대로 개정하기로 하고 대강만 명시하고서 여유를 두고서 이것을 공포하고 하루바삐 우리 정부를 수립합시다. 지금 8월15일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곧 수립된 독립정부의 실권자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이 예정돼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의원들에게 ‘경고’까지 해대는 위 발언의 무게는 다르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세계정세를 꿰뚫은 현실적인 차선책을 과단성 있게 밀고나가는 원로독립운동가의 모습? 뭐 이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미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예정돼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집권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헌법조항과 관련해서는 의사일정을 무시하면서까지 회기를 늘리면서, 그 외의 조항에서는 속전속결을 의원들에게 ‘경고’하는 모습. 입으로 ‘민주’를 얘기하지만, 그래서 ‘다수결’을 얘기하지만, ‘다수결’로 의사관철이 안 될 때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그의 행태. 법 위에 그의 의지를 두려는 모습. 우리는 이런 모습을 제1공화국 - 왕정이 더 어울리는 - 내내 가슴 아프게 보게 됩니다.
자신의 뜻이 다수의 뜻이 될 수 없는 국회와의 관계를 포기하고, 측근을 중심으로 한 관료조직과 법적 근거 없는, 자신을 총재로 하는 국가기구적 대중조직 (국민회, 학도호국단, 대한청년단 등)을 통한 협박과 관제데모로 ‘다수’를 조작하고, 그도 안 되면 폭력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해나가는 파시스트적 통치방식은 제헌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드러냈던 것입니다.
다시 조갑제의 발언을 생각해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이 건국정신이 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이 헌법정신이 됐습니다"
당시 ‘건국정신’, ‘헌법정신’에 담겼어야 할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한민국을 새롭게 재건할 제헌의회에 부여된 임무, 제헌헌법에 담겼어야 할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민중의 요구는 무엇이었을까요?
‘인민의 해방(즉 근대적 시민권의 보장)’, ‘독립국가 수립’, ‘통일국가 수립’, ‘공화국 수립’, ‘친일파 청산’ 이 다섯 가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중 ‘이승만의 정신’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독립국가 수립’은 분명했습니다. 그 ‘독립’을 위해 ‘반공’이 필요했고, ‘통일국가 수립’은 ‘반공’일 경우에만 허용됐고, 나머지 세 가지 시대적 요구는 모두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헌헌법에는 위 다섯 가지가 다 담겨있습니다. 비록 ‘통일지향’의 의미가 명시적으로 표현돼있지는 않으나, 전문이나 각 조항에서 한민족, 북한 땅, 북한 인민들도 포괄하려는 노력이 담겨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제헌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그런 확인을 더욱 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 그것이 ‘반공, 북진 통일’일지언정, 제헌의원 누구도 영구분단을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승만의 정신’과 상당히 다른 ‘제헌헌법의 정신’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누구의 정신을 ‘건국정신’, ‘헌법정신’으로 봐야할까요? 제헌헌법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얻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고,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로 쓰여진 헌법 조문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헌법이기에 ‘제헌헌법의 정신’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일까요?
그런데 정말로 우리 제헌헌법은 수많은 대한국민들의 피와 땀, 눈물이 서려있지 않은 헌법일까요?
갑오농민전쟁 이후 수많은 군주제와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 그리고 해방 후의 인민항쟁들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제헌헌법이 이승만의 하수인, 거수기 그리고 법률전문가 들에 의해서 제한된 공간에서
인민의 요구와 무관하게 뚝딱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게 희생도 없이, 시대의 반영도 없이 만들어진 헌법이라면
그 헌법은 이후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민중들로부터 버림받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헌의회에서, 일제강점기 투쟁하고 희생된 분들 그리고 당시 인민의 거부할 수 없는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에 ‘민주공화국’도, ‘친일파 청산’도, ‘경제정의’도 제헌헌법에 담길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대한국민의 이름으로 그러한 주장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제헌헌법의 정신’과 ‘이승만의 정신’을 동일시하는 조갑제나,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 재건을 인정하기 꺼려하는 진보(?)분들이나 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영웅사관을 갖고 있는 조갑제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영웅사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진보 진영분들이 그런 입장을 취하시는 것은 오히려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 분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이 ‘이승만의 대한민국’인지, ‘제헌헌법의 대한민국’인지 묻고 싶습니다.